[기자의 눈/김기현]법 만드는 국회가 ‘관습법’으로 운영되나

  • Array
  • 입력 2009년 12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선례(先例)를 보고 따져봐야죠.”

27일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기자가 한나라당의 새해 예산안 단독처리 방안들이 적법한지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그로선 ‘모호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먼저 한나라당이 민주당이 점거 중인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대신 본회의장 등 다른 회의장에서 단독회의를 열어 예산안을 의결할 경우부터 살펴보자.

국회법에는 회의장소 변경 절차에 관한 규정이 없다. 국회법 제110조와 113조에는 ‘표결 시 의장이 안건의 제목과 표결 결과를 의장석에서 선포한다’고 돼 있다. 선포하는 자리에 대한 규정만 있을 뿐이다. 이 규정 역시 본회의에 해당하는 것이다. 예결위 같은 상임위 회의에 대한 규정은 아니다. 다만 국회법 71조의 준용 규정에 따라 위원회의 회의에도 적용할 뿐이다.

민주당의 거부로 구성조차 못한 계수조정소위의 심사를 거치지 않고 예결위가 예산안을 의결할 수 있는지도 논란이다. 국회법 57조에는 ‘위원회는 특정한 안건의 심사를 위해 소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 돼 있다. 한나라당은 이 조항을 들어 반드시 소위를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런 해석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국회에선 의사진행 도중 애매한 상황이 벌어지면 국회법 해석을 놓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다. 국회법이 세부적인 사항을 거의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법의 세부사항을 규정하는 시행령이 정작 국회법에는 찾아볼 수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논란이 생기면 국회사무처 직원들은 선례집인 ‘국회법해설’부터 찾아봐야 한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정작 국회 운영은 ‘관습법’에 의존하는 셈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례와 달리 국회의 선례가 얼마나 법적 구속력이 있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반면 미국 영국 등 선진국 의회는 의사진행과 내부규율을 종합적으로 규정한 의사규칙(rule)을 갖고 있다. 한국 국회도 의사규칙을 만들어 회의장 규정이나 예결위의 예산심사 절차를 구체적으로 규정했더라면 불필요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

국회운영제도개선자문위원회는 올해 5월 국회 의사규칙 제정 방안을 연구해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제출했지만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의원들이 오히려 의사규칙 제정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엄밀한 규정에 구속되는 것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치적인 타협에 매달리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김기현 정치부 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