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정수]무늬만 고교선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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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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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이 고교선택제 시행을 위한 사전 조치로 ‘서울 고등학교 학교군 설정안’을 2008년 9월 행정 예고한 바 있다. 2단계에 걸쳐 희망 학교에 추첨 배정하는 고교선택제를 2010학년도부터 시행키로 했다.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제약한 고교평준화제도의 기본틀을 도입 36년 만에 부분적으로 수술한다는 내용이어서 수요자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학생 선택권 줄이고 결과 비공개

고교선택제의 의미는 교육 수요자에게 학교선택권의 일부를 돌려준다는 데에만 있는 게 아니다. 그간 아무런 경쟁 없이 손쉽게 학생을 배정받은 학교에 경쟁이라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도입하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학생 유치를 위한 학교 간 경쟁을 촉발해 공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촉매제가 되리라 기대했다.

시교육청이 당초 밝힌 고교선택제 방안은 1단계에서 서울 전 지역 학교를 선택해 학교별 정원 20%를 추첨해 배정한 뒤 2단계에서 거주지 일반학교군 내의 학교를 선택해 정원 40%를 추첨 배정하도록 돼 있었다. 나머지 40%는 3단계에서 거주지와 교통편을 고려해 강제 배정하기로 했었다.

예고와는 달리 3단계 배정 방안 중 2단계에서 지원율이 높은 학교는 교통편을 고려해 학교에서 가까운 곳에 사는 학생을 우선 배정하기로 결정을 번복했었다. 정작 2009년 12월이 되자 시교육청은 현재 중학교 3학년생부터 처음 실시하는 고교선택제에서 사실상 학생의 선택권을 대폭 축소하는 배정 방안으로 변경했다. 2단계에서 지원율이 높은 학교의 경우 같은 학군에 속하더라도 상대적으로 통학거리가 먼 학생은 배정될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

더 큰 문제는 고교선택제를 도입한 서울시내 학생의 고교선택 결과를 2013년까지 공개하지 않겠다는 데 있다. 이렇게 되면 일선 학교는 자기 학교 선호도가 다른 학교에 비해 높은지 낮은지 알 방법이 없다. 제도가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쟁률부터 공개하면 ‘비선호 학교’로 낙인찍히는 학교가 나올 수 있다는 우려를 이해하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원칙의 견지이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선호도가 낮은 학교를 지원해주고 학교 간 경쟁을 통해 스스로 개선책을 찾도록 하는 고교선택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으려면 관련 정보의 공개는 필수적이다.

무늬만 고교선택제여서는 안 된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실질적인 학교선택의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 방향인 자율과 경쟁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고교선택제가 안착해야 한다. 학교정보공시제도, 학업성취도평가, 교원능력개발평가제도, 교장공모제, 교육과정 운영 자율화, 자율형사립고 지정 같은 제도 도입은 하나의 패키지로서 학교가 자율적으로 경쟁력을 키워 나가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다. 고교선택제도와 정보공개제도는 이러한 경쟁시스템의 중추역할을 담당한다.

비선호 학교 원인 분석과 대책을

결국 교육개혁의 성패는 학교 손에 달려 있고 학교가 달라져야 한다. 학교가 국가 기본교육과정을 준수하면서도 개별 학교의 교육과정을 차별화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더 나은 교육을 하려는 학교 간 경쟁이 불붙어야 한다.

학생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비선호 학교에 대해 원인 분석과 대책이 필요하다. 초기엔 교육여건 개선과 우수교사 파견 등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러고도 개선이 되지 않는 학교에는 행정적 불이익을 줄 수밖에 없다. 지원자가 적어 강제배정으로 정원을 채우는 학교를 마냥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정책의 신뢰는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시해야 할 가치이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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