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인택]신뢰 잃은 공학교육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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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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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학교육인증원은 상당수 공과대를 대상으로 공학교육인증(ABEEK)을 실시하고 있다. 공과대 교수는 2년 또는 4년 주기로 시행되는 평가를 위해 자신이 담당한 분야의 내용을 기록하고, 그간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서에 반영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2000년 예비인증에서 시작된 공학인증이 어느새 10년이나 되었다. 시작할 때는 좋은 것이려니 하는 생각에 교수 사회는 상당한 업무 부담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수용했다. 학생들도 취업에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공학인증에 참여했다. 공학인증을 통해 무한 경쟁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찾는다면서 입사 시 인증을 받은 학생들에게 가산점을 주겠다고 언급한 기업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전혀 다른 상황이 됐다. 졸업생 중 극히 소수만이 공학인증을 받고 졸업한다. 학생들이 공학인증으로 현실적인 도움을 별로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 한 명도 공학인증 덕택에 취업했다는 학생이 없다. 학교 졸업 기준을 맞추면서 공학인증의 요구사항을 이행하는 것이 학생에게는 부담스럽게 됐다. 교수도 학생을 더는 설득할 수 없다. 사정이 이쯤 되었으니 내년은 어떻게 될지 불 보듯 뻔하다. 학생들에게 사문화돼 가는 인증프로그램을 대학이 노력과 경비를 들여가면서 계속해야 하는지, 깊은 회의가 든다.

공학인증은 1932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공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학생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또 적절한 훈련과 엄격한 교과과정을 통해 향상된 교육의 결과가 산업계에 반영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공학교육인증(ABET)을 시작했다. 한국의 공학인증은 좀 다른 과정을 가지고 있다. 산업계가 아닌 학계가 그 태동을 주도했다. 졸속으로 만들다 보니 우리나라 실정을 반영하지 못한 채 미국의 ABET에서 그대로 베껴 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증기준은 교육 현장의 교수들에게 다양성의 탈을 쓴 획일성을 강요했으며 산업계에서 아무런 호응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공학인증이 그간 공대 교수에게 공학교육을 뒤돌아보게 하고 주어진 환경 아래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도록 동기를 부여한 측면도 없지 않다. 학생과 더 많은 면담을 통해 학생이 교수를 더 신뢰하고, 교수는 학생에게 실질적으로 조언을 해 줄 창구도 생겼다. 설계과목의 개설을 강조함으로써 학생이 더 적극적인 공학도의 마인드를 가지는 데도 기여했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공학인증은 신뢰를 잃었다. 공학교육의 모든 영역을 정규·수치화하려는 공학인증의 기준이 각 학과의 특성을 철저하게 무시했기 때문이다. 학과마다 전문성에 따라 필요한 수학·과학 과목이 다르다는 사실을 외면했을 뿐 아니라 전문교양 분야까지 학점 수를 제시하다 보니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수강할 수 있는 교양과목의 다양성이 훼손됐다. 무엇보다도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공학인증의 틀 안에서 기업이 공학교육의 변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학생 교수 산업체 당사자 사이에 교감이 없는 공학인증은 학생들에게 무의미한 선택, 교수에게 불필요한 짐, 산업체에는 무관심의 대상이 됐다.

공학인증은 우리나라 공학교육의 발전을 위해 대학에 충분한 영감을 주었고 그 역할과 사명을 다했다. 이제 공대 교수는 이공계 기피 풍토와 학생 수 감소에 따른 인적자원 고갈에 대응하는 생존 전략을 수립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국가의 미래가 공대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공대 교수의 위기의식이 공학인증 때문에 그 초점을 잃어버리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김인택 명지대 통신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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