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구동존이 넘어 동기상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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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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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중국의 경제수도인 상하이(上海) 시 당 서기에 임명되기 전까지 그를 주목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장 유력한 차세대 최고지도자로 부상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더욱 적었다. 오늘(16일) 방한하는 시진핑(習近平·56) 중국 국가부주석 얘기다.

그는 2012년 가을 구성될 차세대 지도부에서 후진타오(胡錦濤) 당 총서기의 뒤를 이을 게 확실시된다. 이변이 없는 한 3년 뒤엔 ‘중국의 1인자’가 된다.

그는 천성적으로 과시하기를 싫어한다. 야심을 숨기고 호시탐탐 자리를 노리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다. 중화권 언론은 그를 “시야가 넓고 사상이 자유로우며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은밀히 힘을 기른다)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평한다. 곧잘 회자되는 이름 석 자를 딴 ‘삼행시’는 그의 인품을 대변한다. ‘윗세대의 장점을 잘 배우고(習), 지도부와 인민의 거리를 좁히며(近), 소박(平)하고 겸손하며 온화하다는 것이다. 지근거리에서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이웃집 아저씨 같다”고 말한다.

그는 개방 뒤 경제특구를 처음 제안한 혁명원로 시중쉰(習仲勳·1913∼2002)의 막내아들이다. 부친이 마오쩌둥(毛澤東)의 박해를 받아 1962년부터 13년간 산시(陝西) 성 오지로 하방되면서 다른 태자당과 달리 유복하게 자라지 못했다. 그의 서민적 풍모는 여기서 연유한다.

그에겐 정치적 비토세력이 거의 없다. 그 덕분에 그는 2007년 10월 열린 제17차 당 대회에서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출신의 리커창(李克强) 부총리나 같은 태자당 출신의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 시 서기를 제치고 차세대 주자 중 맨 앞인 서열 6위의 정치국 상무위원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올가을 개최한 ‘제17기 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 전회)’에서 예상과 달리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선출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그의 앞날에 이상기류가 형성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기우라는 분석이 많다. 그는 지난달 중국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영접했다. 차세대 선두주자임을 재확인한 셈이다. 후 주석 역시 부주석 시절이던 1998년 방중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을 공항에서 영접했다.

군부도 그를 적극 지지한다. 원로그룹의 후원도 두텁다. 현 지도부에서도 공청단 계열을 빼면 대부분 그를 지지한다. 정치 분석가들은 그가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이라고 말한다. 앞으로는 카리스마가 아니라 다양한 가치와 의견을 조화시킬 줄 아는 지도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코펜하겐 기후회의로 일정이 빡빡한 이명박 대통령이 그를 직접 접견하고 조찬을 함께 하기로 한 것도 그의 미래 위상을 꿰뚫어봤기 때문이다.

이번 아시아 순방은 황태자 지위를 대내외에 과시하고 차기 최고지도자로서 국제 감각을 익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05년 7월 방한한 바 있는 그는 수천 년의 한중 교류 역사를 거론하며 친근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와 3번 만났던 박준영 전남지사는 “말을 끝까지 경청하고 판단력과 결단력을 갖춘 지도자”라고 높이 평가했다.

그의 이번 방문이 구동존이(求同存異·같은 것은 추구하고 다른 것은 남겨둔다)를 넘어 동기상구(同氣相求·뜻이 맞는 사람은 자연히 한데 뭉친다)하는 한중 관계를 만드는 발판이 되길 소망한다.

하종대 국제부 차장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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