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교 개편안 ‘백년대계’의 전진일까, 후퇴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11일 03시 00분


정부가 현재 초등학교 6학년생이 고교에 진학하는 2013학년도 이전에 전국 외국어고의 정원을 대폭 줄이거나 국제고, 자율형 공사립고, 일반고로 전환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과중한 사교육비가 서민 가계를 압박하고 출산율 저하의 주요한 요인이 되고 있어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외고 개편 취지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교육경쟁력 면에선 명백한 후퇴가 아닐 수 없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발표한 대학수학능력시험 분석에서 강창희 중앙대 교수는 학급 내 동료집단의 특성이 개별 학생의 학업 성적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다. 이번 개편안이 시행되면 우수 학생들을 치열하게 경쟁시켜 국내외 명문대학에 진학시키고 엘리트로 키워온 외고의 역할은 상당 부분 위축될 수밖에 없다.

평등주의에 집착하던 노무현 정부도 여론의 반대에 부닥쳐 외고를 없애지 못했다. 학교 자율과 교육경쟁력 강화를 강조하던 이명박 정부가 외고를 대폭 줄이고 성격을 바꾸고 간판을 바꿔 달게 하는 것은 ‘교육 포퓰리즘’이 아닐 수 없다. 국제고로 바꾼 뒤에도 우수 학생들이 계속 지원하면 다시 질시(嫉視)하는 여론에 기대 국제고도 없앨 것인가.

인적자원이 곧 국가경쟁력인 글로벌 경제시대를 맞아 우수 인재를 글로벌 수준으로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이번 개편안은 교육경쟁력 강화라는 세계적인 흐름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우려를 자아낸다. 정부는 외고가 설립 목적에 맞지 않는 운영을 했다고 비판하지만 우수한 학생들에게 수월성(秀越性) 교육을 제공한 공로도 인정해야 한다.

정부가 내년부터 외고 입학전형에 중학교 2, 3학년 영어과목의 내신만 반영하도록 함으로써 사교육비는 다소 줄어들지 모른다. 그러나 중학영어 만점받기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향후 정원이 줄어든 외고 경쟁률은 더 높아질 가능성도 크다. 잘하는 학교와 학생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교육에 실망한 학부모들이 해외 조기유학을 택할 가능성은 없을 것인가.

내년부터 신입생 전원으로 확대되는 특목고의 입학사정관제가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독서 등 학생의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본다지만 ‘독서 사교육’이 등장할 수 있다. 더구나 외고는 외국어 전공 분야에 진로 의지가 있는 지원자만 선발하게 된다. 외고의 역할은 외국어 능통자 양성이 아닌, 세계무대에서 뛸 수 있는 인재를 기르는 일이 돼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사교육을 잡겠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반계고의 수월성 교육능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지만 정부가 전교조의 반대를 이겨낼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외고의 위축이 미래세대의 경쟁력을 가로막는 백년대계의 퇴행(退行)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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