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최변각]남극에 묻혀있는 ‘우주의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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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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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달 표면의 충돌구에서 얼어 있는 물을 발견했다고 13일 발표했다. 21세기 들어 미국 유럽 일본 중국 인도 등 우주과학 강국은 달 탐사 계획을 앞 다퉈 수립하고 추진한다. 아폴로 우주선을 이용한 달 탐사 이후 30년간 잠잠하던 달 탐사 경쟁이 다시 불붙은 셈이다. 왜 인류는 달에 가려고 하며 과학 선진국은 왜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 달과 태양계 탐사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까.

우주 개발은 엄청난 기술적 발전과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순수한 과학적인 목적, 즉 지구와 태양계의 기원과 생성 과정을 알고자 하는 인류의 지적 호기심 또한 결코 두 번째 이유가 될 수 없다. 달에는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태양계 생성 초기의 기록이 남아 있으며, 달은 더 먼 천체를 연구하는 전초기지가 될 수 있다.

지구에는 우주로 나가지 않고도 달이나 다른 태양계의 천체를 직접 연구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남극대륙이다. 눈과 얼음의 땅인 남극은 하늘에서 떨어진 돌, 운석의 거대한 저장고이다. 수백만 년에 걸쳐 남극에 떨어진 운석은 빙하에 실려 서서히 해안 쪽으로 이동하다가 산맥에 빙하가 가로막히면 얼음 위로 노출되면서 모인다.

이런 장소를 찾으면 태양계 곳곳에서 지구로 날아온 암석을 만날 수 있다.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비교적 최근에는 이탈리아와 중국이 합류하여 매년 남극에서 운석을 찾고 있다. 올해까지 발견한 남극운석은 3만6000개를 넘는다. 이는 인류가 발견한 운석의 80%를 차지한다. 이 중에는 희귀한 종류인 달에서 온 운석 29개와 화성에서 떨어져 나온 운석 22개가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 겨울부터 남극대륙에서 운석을 찾았다. 세 차례에 걸쳐 수집한 남극운석은 29개로 다른 4개국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개수에 비해 비교적 다양한 종류의 운석을 발견했다. 여기에는 태양계 최초의 고체물질로 이루어진 콘드라이트, 소행성에서 일어난 화산 폭발로 형성된 화산암인 유크라이트, 소행성 핵과 맨틀의 경계에서 만들어진 팔라사이트 등 학술적 가치가 높은 운석을 포함한다.

남극대륙에 자국 기지를 갖고 체계적인 지원을 받는 다른 국가의 탐사대와 달리 모든 운송 수단과 대부분의 장비를 임차하여 그야말로 몸과 열정만으로 이루어낸 성과이기에 무척이나 소중한 운석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 첫 쇄빙선인 아라온호가 극지연구소로 인도됐고 남극대륙기지 설립 사업 추진이 속도를 내고 있어 이제 우리도 체계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남극운석 탐사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운석은 지구를 형성한 재료이면서 태양계 생성의 비밀을 간직한 우주의 유전자(DNA)다. 운석에는 45억6800만 년인 태양계의 나이가 기록돼 있으며 초신성과 거성 등 태양계에 기원물질을 제공한 조상별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태양계가 만들어지고 지금의 형태로 진화한 과정이 운석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을 뿐 아니라 생명체 탄생에 필수적인 태양계 초기의 유기물까지 들어 있다.

미래의 광물 자원으로 활용할 다양한 종류의 소행성의 화학 조성도 운석을 통해 정확히 규명할 수 있다. 이것이 반경 500km 내에 생명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머나먼 오지에서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추위와 몸이 날아갈 것 같은 눈 폭풍, 생명을 위협하는 크레바스의 위협과 싸우면서도 하늘에서 떨어진 작은 돌 하나를 발견한 과학자의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 피어나는 이유이다.

최변각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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