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2010년을 기념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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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5일 22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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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개봉되어 7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화려한 휴가’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뤘다. 당시 주연을 맡았던 이요원 이준기 같은 배우들이 제작발표회에서 “솔직히 이전까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몰랐다”고 말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젊은 세대들이 29년 전인 1980년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모르는 마당에 그 이전에 있었던 4·19혁명(1960년)이나 6·25전쟁(1950년 발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올해 4월 행정안전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20대의 56.6%가 6·25전쟁이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6·25 60주년, 4·19 50주년의 해

나이 든 분들은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개탄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0년 단위로 끊어지는 50주년, 100주년 같은 기념일이 그 때의 역사를 되살려내는 점이다. 이런 날이 되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눈을 돌린다. 내년 2010년에는 유난히 이런 기념일이 여럿 들어 있다. 4·19혁명 50주년,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5월18일), 6·25 60주년이 이어진다. 8월29일은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날이다.

풍성한 행사들이 벌써부터 준비되고 있다. 6·25 행사를 위해 국무총리 산하에 기념사업위원회가 올해 4월 발족됐다. 4·19 행사는 4·19 관련 단체 3곳이 민간 차원에서 위원회를 구성하고 최근 사업 계획을 확정했다. 5·18 행사는 5·18기념재단이 중심이 되어 준비 중이다. 정부는 세 사업 가운데 6·25만 국가 주관으로 하고 다른 사업은 민간에 맡기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6·25 사업은 외국 국가원수 초청 등 국가 차원의 행사가 포함되어 있어 불가피하게 정부가 나서고 나머지 사업에서는 예산 지원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견(短見)이다.

내년에 10년 주기를 맞는 역사적 사건들은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을 압축해 놓았다. 외국의 6·25 참전용사들은 자신들이 목숨 걸고 싸웠던 전쟁의 폐허 위에서 한국이 경제 발전을 이룬 것에 큰 자부심을 갖는다. 남북 분단 직후 이어진 6·25는 민족적 비극이지만 우리의 경제적 성취를 더 두드러지게 대비시키기도 한다. 반면에 4·19, 5·18은 한국 민주화의 상징이자 향후에도 역사 발전에 귀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한 가지 더한다면 한일강제병합 100년은 우리가 나라를 빼앗기는 극한 상황까지 내몰렸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국치(國恥), 분단, 전쟁, 산업화, 민주화에 이르는 근현대사의 큰 흐름이 모두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행사들을 제각각 치르거나 ‘국가 주관’ ‘민간 주도’로 나눌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부가 ‘올해에 이런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으니 그냥 지나치지 말고 총체적 의미를 되새겨보자’고 먼저 앞장서는 일이 필요하다. 이들 역사적 사건 전체를 아우르는 기념행사를 따로 마련하거나, 한걸음 나아가 우리 사회를 통합하고 화해시키는 통로로 활용하는 방안도 숙고할 만 하다.

사회 통합, 화해의 통로로 활용해야

광복 63주년이자 건국 60주년이었던 지난해 8·15 행사에서 야당 인사들이 정부 주관 기념식에 불참하는 일이 있었다. 잘못이 누구에게 있든 중요한 기념일이 사회 분열을 초래한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내년 역시 역사적 사건의 성격에 따라 편이 갈려 4·19, 5·18 행사는 민주화 인사들의 잔치, 6·25는 산업화 쪽의 잔치로 치러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행사 때마다 대립과 갈등이 불거질 우려가 있다.

우리가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이유는 그 때의 상처를 드러내는데 있지 않다. 윤광장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행사를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한마당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내년의 역사적 기념일을 사회 전체를 위해 긍정적으로 승화시키느냐는 우리 모두에게 달려 있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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