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회의장 조롱하는 저질 국회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5일 03시 00분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가 그제 미디어관계법을 재논의하자며 김형오 국회의장을 찾아가 “이 자리에 왜 계시냐. 월급이 탐나서 그러냐. 정말 부끄럽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이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자 이 원내대표는 “그 정도 아량도 없느냐. 그런 국회의장과 같이 일한다는 게 창피하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명색이 제1 야당의 원내대표가 국회의장의 면전에서 사인(私人) 간에도 하기 어려운 막말을 하는 우리의 국회 수준이 부끄럽다.

김 의장은 그동안 여야 간 숱한 ‘입법전쟁’ 와중에서 당적을 떠나 중립적인 위치에 서려고 나름대로 애를 썼다고 볼 수 있다. 야당도 한때 김 의장의 그런 태도를 높이 평가했다. 한나라당으로부터는 심할 정도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미디어법만 해도 김 의장은 진작 직권상정을 할 수 있었지만 8개월간이나 여야의 타협을 유도했다. 민주당이 끝내 타협을 거부하자 국회법에 따른 처리 수순을 밟은 것이다.

민주당은 여당의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의장실을 점거한 적도 있다. 9월 정기국회 개회식 때는 민주당 의원들이 ‘날치기 주범 김형오 의장’이라고 적힌 노란색 천을 흔들고 “김형오는 사퇴하라”고 외치며 집단 퇴장했다. 국회의장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전 세계에서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장에게 고함치고 야유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을 것”이라고 개탄했다.

민주당의 미디어법 재논의 요구도 억지다. 민주당이 헌법재판소에 의견을 구한 이상 그 결정에 따르는 것이 정도(正道)다. 헌재가 지적한 ‘절차상의 하자’나 ‘야당 의원들의 입법권 침해’도 따지고 보면 민주당이 원인 제공을 한 것이다. 정상적인 논의를 거부하고 정당한 표결 절차까지 방해하다 헌재로 끌고 가 놓고선 이제 와서 결정에 승복하지 않겠다니 이러고도 ‘민주 정당’이란 말을 꺼낼 수 있는가.

우리의 국회의장은 국회 운영에 관한 실질적 권한이 거의 없는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의사일정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상임위 운영을 비롯해 실제 의정(議政)이 굴러가게 하는 것까지 모두 여야 정당의 손에 달렸다.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징계 권한조차 없다. 국회의장의 권위는 국회의 품격, 나아가 정치 선진화와 직결돼 있다. 차제에 국회는 국회의장의 권위를 바로 세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기 바란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