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 기 소르망]중국 변해야 남북장벽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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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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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한국인은 약간 착잡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게 틀림없다. 유럽을 나눴던 서쪽의 장벽은 사라졌지만 한국을 나눈 동쪽의 장벽은 그대로 남아 있다. 두 장벽은 본질상 같은 것이다. 하나가 공산주의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면 다른 하나는 현재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아시아에서처럼 서유럽에도 공산주의를 유토피아로 생각한 많은 지식인이 있었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나 자유민주주의의 대안처럼 보였다. 남한에서처럼 서독에서도 공산주의 진영이 이른바 ‘제국주의’ 진영보다 문화적 경제적으로 우수하다고 보는 단순한 사람들, 이상주의자들, 무지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인간은 두 체제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장벽은 왜 있는 것인가.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의 침투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우리에게 들려온 대답이었다.

1989년 11월 9일 이런 신념은 끝장났다. 난 그때 베를린에 있었다. 장벽이 뚫리자 동독에서 온 사람들이 서독의 슈퍼마켓에 들이닥쳐 바나나와 기저귀를 사서 돌아가던 모습이 기억난다. 공산주의가 주민을 먹여 살리는 데 완전히 실패했음이 드러났다. 동쪽에 있는 장벽의 붕괴도 남한 소비사회를 향한 북한 주민의 갈망에서 비롯될 것임에 틀림없다. 20년 전 어떤 서독인도 동독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20년간 이론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공산주의가 자본주의 대안이 되지 못함이 드러났다. 공산주의는 궁핍의 만연과 특권계층의 특별한 권리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1989년 이래 공산주의 체제는 군사적 억압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동독에서 그 누구도 자발적으로 공산주의에 남아있길 원하지 않았다. 벽은 도망가는 것을 금지한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서 증명됐듯이 화약 없이 경비견 없이 지뢰 없이 철조망 없이 어떤 공산주의 정권도 24시간을 지탱할 수 없다.

고르바초프가 소련군에게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동독인은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고르바초프는 왜 그랬을까. 그는 휴머니스트였던가, 아니면 자신이 속한 체제의 본성을 잘 몰랐던 것인가. 그는 장벽 없는 공산주의, 다시 말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사회주의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제3의 길은 머릿속에서만 존재한다. 20년간 민주적 자본주의 외에 어떤 체제도 등장하지 않았다. 중국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국가자본주의로 옮겨갔다고 하지만 여전히 공산주의로 남아 있고 이동과 표현의 자유를 막는 수많은 장벽을 갖고 있다.

한국을 나눈 동쪽의 장벽도 서쪽의 장벽과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인가. 1989년 유럽에서 아무도 베를린 장벽이 단번에 무너지리라 예측하지 못했음을 기억하자. 동쪽 장벽의 붕괴도 언제일지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체제의 비효율성과 비정당성을 알아낸 북한판 고르바초프가 나타나기를 희망해야 할 것인가. 그러나 설혹 그런 경우가 찾아온다 해도 두 장벽의 붕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독일의 통일은 주변국에 의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동쪽 장벽이 무너질 때 한반도의 통일을 아시아 주변국은 한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받아들이길 주저한다. 장벽은 공산주의 독재의 심장부가 변화하지 않는 한 무너지지 않는다. 과거에는 그것이 모스크바였고 지금은 베이징이다.

기 소르망 프랑스 문명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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