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독감백신조차 맞기 힘든 美의료보험

“한 사람에 20달러입니다. 이 보험은 적용하지 않아요.”

지난 주말 워싱턴 인근의 한 병원을 찾은 기자와 가족은 낭패를 봤다. 독감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방문했지만 정작 비용이 문제였다. 미국에서 백신을 제때 확보하지 못해 혼란을 빚고 있는 신종 인플루엔자A(H1N1) 얘기가 아니다. 늦가을이면 닥치는 계절 독감 예방주사를 맞으려다가 겪은 일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신종 플루에 대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열흘 전쯤만 하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백신이 달려 사망자가 잇따르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부가 확보한 백신 물량이 당초 예상치의 10분의 1에 그쳤다는 소식에 은근히 걱정이 됐다. 당초 10월 말경 예정됐던 초중학생들의 신종 플루 백신 접종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는 얘기를 큰아이로부터 들은 것도 이때쯤이다. 상황이 나빠지면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신종 플루 백신 접종이 당분간 어렵게 된 상황에서 계절독감 주사라도 우선 맞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보험카드를 챙겨 병원을 찾아 나섰지만 결국 접종을 포기하고 말았다. 이 병원에서는 기자가 가입한 보험을 적용하지 않았다. 결국 의사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병원 문을 나서야 했다. 기자가 미국에서 민간 보험회사에 내는 의료보험료는 월 100만 원가량(4인 가족)된다. 정부가 지원해 주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급여 수준과 상관없이 본인이 알아서 민간보험을 사야 한다. 회사마다 다양한 보험을 내놓고 있어 보험료와 보험 혜택도 천차만별이다. 많은 돈을 들여 보험에 들었지만 4인 가족 독감 예방접종비로 약 10만 원을 호주머니에서 꺼내야 한다는 사실이 씁쓰레했다. 사정을 따져 묻자 보험사 관계자는 “다른 병원을 찾아보든지, 급하면 보험이 안 되더라도 지금 맞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주민등록번호 하나만 있으면 어느 병원을 가든지 보험 혜택을 받는 한국에 비하면 미국은 의료 면에서는 불편한 나라다. 생사를 가르는 비상상황에서 병원응급실 문을 두드리면 수백만 원의 비용을 물리고 가족 중에 누군가 큰 수술을 받게 되면 보험이 없을 경우 평생을 병원비 갚느라고 고생하는 곳이 바로 미국이다. 이기적인 보험회사와 의사가 버티고 있는 한 오바마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추진하는 건강보험 개혁이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얼마나 구해낼지 잘 모르겠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