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교육정책의 ‘마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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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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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외국어고 폐지 논란을 보고 있으면 아직도 참여정부인가 하는 착각이 든다. 이명박 대통령이 2007년 대선 때 교육공약으로 ‘자율과 경쟁’을 내세워 ‘평등교육’을 강조하던 참여정부와는 다른 교육정책을 펼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외고 폐지 논란을 주도한 인물은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다. 그는 외고가 사교육의 주범이기 때문에 외고를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고 중학교 내신 50% 이내 학생의 지원을 받아 추첨으로 선발하도록 해야 한다고 사실상 ‘외고 폐지’를 거론했다. 이에 외고 교장들은 “평준화 시대에 학력 증진을 위해 공헌해온 외고를 사교육을 빌미로 폐지하려는 것은 마녀사냥식 해법”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분위기가 심상찮다고 판단한 외고들은 영어듣기 폐지 등 입시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일단 몸을 낮췄다. 이에 정 의원은 “외고는 분명히 마녀”라며 “외고가 외국어 시험을 안 본다는 얘기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고 몰아붙였다.

그러나 외고를 자율고로 바꾸려고 해도 전환 기준을 갖춘 외고가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머쓱해졌고, 연말까지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는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장관을 그만두라”고 몰아세우면서 정부 내에서도 반감이 퍼지고 있다. 그 와중에 외고 입시를 준비해온 학부모나 일반 학부모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결국 학원 심야교습시간 제한 논란 때처럼 이 대통령이 나서면서 겨우 정리되는 형국이다. 이 대통령이 2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가 조속히 대책을 마련하는 게 좋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고, 정 의원은 27일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의 외고 관련 토론회에 갑자기 불참해 한발 빼는 모습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늦어도 12월 중순까지는 개선안이 나올 것”이라며 “이제는 속도를 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정 의원의 외고 때리기가 명문고로 부상한 대원외고에 대한 견제라는 분석부터 내년 서울시장 출마를 겨냥한 행보라는 정치적 추측까지 분분하지만, 순수하게 보더라도 외고 폐지론은 아무래도 단견인 것 같다. 외고는 평준화제도의 부작용인 하향 평준화를 보완하고 수월성 교육을 위해 도입됐고, 일정 부분 교육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외국에서도 극찬하는 학교를 공부 잘하는 학교라는 시샘 때문에 폐지 운운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다.

사교육 문제는 부실한 공교육 탓이다. 그래서 참여정부 때부터 ‘1군(郡) 1우수고’ 정책을 도입해 교장초빙공모제, 교원인사권 및 학생선발권 확대, 교육과정편성 자율권, 교육예산 우선 지원 등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획일적 교육을 탈피해야 한다며 자율형사립고, 마이스터고 등 ‘학교 다양화’ 정책을 실시하고 있지 않은가. 최근 공개된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 분석 자료를 보면 대도시든 지방이든 어떤 형식이라도 학생선발권이 있는 학교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어느 정도의 경쟁은 필요하다는 뜻일 수 있다.

이제 교과부가 외고 개선책을 내놓을 때까지 불필요한 논쟁은 지양했으면 한다. 빨리 대책을 내놓으라고 다그치는 것 역시 우리가 그토록 비판하는 ‘졸속정책’을 내놓으라는 ‘마녀’ 행위나 다름없다. 외고의 문제점을 보완하되 학교 특성을 살려 우리 공교육을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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