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이영]‘과거사 아픔’ 뮤지컬로 공감한 韓日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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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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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일본군에 끌려간 한국인 학도병의 애달픈 사랑을 그린 한일합작뮤지컬 ‘침묵의 소리’ 일본 4개 도시 순회공연이 28일 도쿄 기노쿠니야 홀에서 막을 내렸다. 객석을 가득 메운 400여 명의 관객은 연방 눈물을 훔치며 배우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열렬한 갈채에 커튼콜도 세 차례나 이어졌다. 배우 권명현 씨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흐느끼는 모습을 보며 마음속 깊은 곳부터 찡해지곤 했다”고 말했다.

‘침묵의 소리’는 9월 한국 공연을 마친 뒤 일본 우베, 오사카, 나고야, 도쿄에서 열린 13회의 공연이 모두 성황을 이뤘다. 매회 길게 늘어선 줄에 양국 스태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본 긴가도 극단과 이 작품을 공동 제작한 서울시뮤지컬단의 유희성 단장은 “홍보도 제대로 못했는데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신기하다”고 했다.

전쟁과 잊혀져가는 과거사라는 무거운 주제를 관객은 회피하지 않았다. 신문을 보고, 지인의 추천에 공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어두운 극장에서 눈물을 흘렸다. 관객 야나기 소타 씨(57)는 “60년 전 전쟁의 피해를 안고 살아온 사람이 오늘날에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이 합작뮤지컬이 일사천리로 달려온 것만은 아니었다. 배우 가타기리 마사코 씨는 “한일 간 인식이 다른 역사 문제를 다뤘기 때문에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말했다. 양국 연출자들이 연습 도중에 수시간씩 표현 방법을 놓고 토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불협화음이 난다고 해서 어느 한쪽이 홀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양쪽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일본 측 연출자 시나가와 요시마사 씨는 4년 전을 회상했다. 2005년 그는 이 뮤지컬의 원작 희곡인 ‘침묵의 해협’으로 서울시극단과 함께 한국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일본 시마네 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조례로 제정해 한일 관계가 악화되는 바람에 공연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당시 한국의 지인들이 “이런 시기에 꼭 필요한 공연”이라고 발 벗고 나선 덕에 막을 올릴 수 있었다. 시나가와 씨는 “상황이 달라져 이번에는 작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 공연을 끝낸 뒤 분장을 지우고 양국 배우들이 함께 모인 자리. 한국 배우 박봉진 주성중 한일경 씨가 일본 배우들을 향해 “오쓰카레사마데시다(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하자 일본 배우 가나오 데쓰오 씨도 우리말로 “참말로 고맙습니다”라고 화답했다. 이들은 한국어, 일어, 영어를 섞어가며 3개월간 함께 고생하고 노력한 시간을 밤이 깊도록 되짚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호흡을 맞춰온 이들 사이에 막연한 반일 또는 반한 감정이란 없었다.
―도쿄에서

조이영 문화부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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