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혜숙]고교선택제, 학교 경쟁력 공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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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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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에서 한 학부모가 필자에게 물었다. “고교선택제를 한다는데 자사고나 특목고도 선택할 수 있나요?” 그런 학교도 선택해 진학할 수 있지만 고교선택제는 그런 유형의 학교 선택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일반계 고등학교를 선(先)지원하는 제도를 말한다. 1996년 이래 서울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의 평준화지역은 선지원 후추첨 방식이었다. 서울도 공동학군제 형태로 운영했는데 이번에 학교선택 요소를 강화해 고교선택제라고 부르게 됐다. 이 명칭은 과대포장인 것 같고 선지원 후추첨제라고 불러야 적합하다.

고교선택제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정책이다. 고교평준화제도가 교육 기회의 확대, 형평성 제고라는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지향하지만 수월성 신장과 학교선택권 확대라는 측면에서 한계를 노출한 점은 익히 알려졌다. 수월성 및 선택권과 관련하여 주목할 점은 학교선택권을 강화하면 학교와 교사 간 경쟁을 가져옴으로써 수월성이 촉진된다는 사실이다. 특목고와 자율형사립고는 수월성과 선택권을 높이려는 보완책이지만 사교육 확대 우려의 부작용 논란이 많다. 선지원 후추첨제는 제한된 범위이지만 수월성 강화를 기대하면서 부작용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기대해 볼만한 정책이다.

당적이 다른 국회의원이 폐지론의 칼날을 함께 세우는 외국어고, 지정을 자축하는 요란한 현수막이 걸린 자율형사립고는 물론이고 과학고 전문계고 특성화고 등 다양한 학교가 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일반계 고교에 진학한다. 올해 서울시내 고교 진학자 13만 명 가운데 78.5%가 추첨 배정 방식으로 일반계고에 진학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학교배정에서 선지원 후추첨 방식의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선택권을 강화하고 수월성을 기대하는 작업이 의미가 더 크지 않을까.

고교선택제를 시작하면서 전력투구해야 할 과제는 어떻게 하면 선택권 강화를 교육 수월성 강화로 연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합동설명회 같은 홍보 노력 자체를 크게 나무랄 수야 없겠지만 치장에 불과한 일에 시간과 비용을 투입할 필요는 별로 없어 보인다. 새 제도를 알리는 문제는 이미 시행 중인 학교정보공시제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정확히 안내하면 된다.

학교정보공시제를 활용할 때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에 정말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고민해서 비교 가능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학생과 학부모는 학교선택 시 통학거리, 교통 편리성, 대학진학률을 우선 고려한다고 한다. 현재까지는 대학진학률이 소문에 근거했기 때문에 통학거리와 교통 편리성의 영향이 컸다. 수능성적 공개와 함께 더 많은 학력 정보가 공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어떤 정보를 어느 수준으로 공개하여 학교선택권을 실질적으로 강화할지를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예컨대 학교별, 학군별 경쟁률을 공개할 것인가?

배정 방식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개선도 필수적이다. 올해는 1, 2단계에서 2개 학교씩을 지원하고 정원의 20%, 40%를 배정한 후 3단계에서 강제 배정하는 방식이다. 1지망 학교에 배정받은 학생의 만족도가 높은 것이 당연한 만큼 지망학교로의 배정 비율을 높이는 방향으로 보완해 나가야 한다.

지원자가 미달인 학교는 어떻게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지원 이후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어떤 조치를 취할지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결정과 정책 집행이 요구된다. 공립학교의 경우 교원이 순환근무를 하는데 책무성을 어떻게 물을지, 지망학교에 배정되지 못한 학생의 불만족은 어떻게 줄일지 등 난제가 한둘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교선택제의 홍보보다는 본질적 문제에 집중하도록 당국과 학교에 강력히 주문한다.

김혜숙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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