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윤태]이젠 GDP보다 ‘국민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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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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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많으면 행복이 커질까? 전통적 경제학자들은 국내총생산(GDP)을 발전과 진보를 측정하는 척도로 간주했다. 그러나 1990년부터 경제 이외에도 행복에 영향을 주는 ‘삶의 질’이 부각됐다. 유엔이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DI)가 대표적이다. 인간개발지수는 국내총생산 이외에도 평균수명과 문맹률 등을 토대로 발표한다. 다른 한편으로 삶의 질에 관한 주관적 측정은 1990년대 미국 심리학자 에드 디너의 ‘주관적 안녕’(SWB)에 관한 연구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주관적 안녕은 객관적 삶의 질과는 별개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평가하는지 측정한다.

그러나 행복을 측정하는 다양한 척도는 모순적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먼저 경제성장이 곧 행복감을 증대하지는 않는다.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이 지적한 대로 1973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의 실질임금은 2배로 증가했으나 행복수준은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이스털린 역설’은 소득이 급증한 일본과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한국의 국내총생산도 급속하게 증가했지만 행복감은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유엔의 객관적인 삶의 질 지수도 주관적 행복감과 상반된 결과를 보이기도 한다. 올해 기준으로 호주의 인간개발지수는 세계 4위였지만 행복수준은 50위권에 머물렀다. 이를 ‘호주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특히 호주 사람의 직업 만족도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반면에 최빈국 부탄의 2007년 인간개발지수는 세계 131위에 불과했지만 행복수준은 가장 높았다. 이처럼 사회발전 단계에 따라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기준은 다를 수 있다.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요청으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아마르티아 센이 주도하는 ‘경제성취와 사회진보 측정위원회’가 지난달에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정부의 공공정책이 “경제생산보다 사람의 안녕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경제지표에서 생산보다 소득과 소비를 중요시한다. 그리고 국내총생산 이외에도 객관적 삶의 질, 주관적 안녕, 지속가능성과 환경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를 권고한다. 특히 삶의 질을 측정하기 위해 건강, 교육, 정치참여, 사회적 연결, 경제적 안정, 불평등의 수준을 조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행복지수를 적용하면 미국보다 유럽 복지국가의 순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에서도 행복지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는 조만간 ‘국민행복지수’를 발표하려고 한다. 27일 부산에서 열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세계포럼에서도 스티글리츠 교수 등이 참여해 행복을 측정하는 방법을 두고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이처럼 행복에 대한 공공정책의 초점은 국내총생산이라는 지표 대신 국민행복수준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지고 있다. 이제 정부는 행복의 요인이 복합적인 만큼 행복을 증진하는 공공정책도 종합적 접근법을 선택해야 한다.

무엇보다 경제적 측면 이외에도 삶의 질을 중시해야 한다. 행복의 결정요인 가운데 고용안정, 주택, 교육, 실업대책, 연금 이외에도 가정과 공동체의 안전, 정신과 신체의 건강, 참여민주주의 같은 요인을 중요하게 평가해야 한다. 다음으로 주관적 지표를 통해 대중의 선호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정치과정이 대중을 대변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정치인과 정책결정자는 여론조사의 정보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공공정책은 객관적 지표와 주관적 지표의 적절한 결합을 통해서 성공 가능성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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