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장경제 발목 잡는 법령 고쳐야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0월 22일 03시 00분


법학자들이 세제 금융 공정거래 상법 등 24개 법령에서 위헌(違憲) 가능성이 있는 법조문 114개를 찾아내 어제 전국경제인연합회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분석 대상을 24개로 좁혔으니 망정이지, 문제 조항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경제의 공평성에 기울어진 나머지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이나 기업 활동의 자유, 자유시장경제의 가치를 해친 사례들이다.

헌법재판소로부터 가장 많은 위헌 결정이 내려진 분야가 세법이다. 부동산 규제 등 경제 사회 정책적 목적으로 급하게 법을 만들면서 헌법적 가치를 손상시킨 경우가 많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주식을 상속 증여할 때 최대 30%까지 중과세하는 경우처럼 특수관계인에 대한 차별 규정도 위헌 가능성이 지적됐다. 여러 법령에 규정된 특수관계인의 범위는 오늘날의 가족관계 등 현실에 맞지 않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상법은 3% 이상의 주식을 가진 사람이 감사가 되면 3% 초과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1960년대 형제나 가족을 감사로 선임하는 경우를 억제하기 위한 조항이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경제 연좌제’로 위헌소지가 높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기업은 공정거래법으로 상호출자를 규제하고 중소기업은 상생협력촉진 등 22개 법률로 지원하는 정책도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견해가 있다. 지주회사의 지분 규제 등 행정편의적 규제도 사후 규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는 ‘기업 프렌들리’를 내세우며 기업 활동에 관한 행정규제를 일부 없애거나 시행을 유예했다. 위헌 소지의 법령은 그대로 두고 적용 대상을 줄이거나 벌칙을 깎아주는 식의 땜질처방으로는 시장경제 원칙을 살려갈 수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민간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여 위헌 소지가 높은 법령들을 조속히 정비해야 한다. 아울러 경제법령 제정 과정에 법률전문가의 참여를 늘리고 다른 법령과 상충되지 않도록 점검하는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전오 성균관대 교수는 “국가적 구조적 과제를 세법 등을 통해 임기응변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부의 행정편의를 위해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하는 법령을 만들다보면 헌법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훼손하게 된다. 국정목표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방법도 시장경제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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