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대한민국館에 口述史도 담자

  • 입력 2009년 9월 24일 20시 23분


코멘트
지난 정권 시절에 우파 단체들이 개최한 집회에는 주로 나이 든 사람들이 모였다. 좌파 단체들이 인천에 있는 맥아더 동상의 철거를 요구하고, ‘6·25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통일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거리낌 없이 나오던 때였다. 어느 현대사 강연회의 끝자락에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지자 머리 희끗한 청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요즘 젊은이들은 과거를 너무 모른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국가 재건 주역들의 울분

6·25전쟁이 일어난 직후 북한의 인민군에게 점령된 서울에서 공산 치하를 겪었다는 그는 “그때의 공포와 고통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경솔하게 말을 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날 강연한 연사는 “개탄만 하지 마시고 실제 겪었던 일을 후대를 위해 기록으로 남겨 놓으시라”고 권유했다. ‘그들만의 강연회’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현대사 박물관’ 건립 계획이 구체화되고 있다. 위치는 경복궁 앞 문화체육관광부 청사로 정해졌고 명칭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유력하다. 문화부 청사는 바로 옆 주한 미국대사관과 쌍둥이 건물로 1961년 필리핀 기술자들이 세웠다. 현재 8층짜리 건물을 박물관 용도에 맞게 리모델링해서 내부를 4, 5층으로 만들고 그 안에 전시물을 채운다는 계획이다. 개관 시기는 현 정부 임기 말인 2013년 초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건국 60주년을 계기로 대한민국이 성장해온 역사를 담겠다는 거창한 취지에 비해 장소가 협소해 보인다. 그러나 박물관 규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내용을 담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가 걸어온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을 함께 보여주되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각각의 객관성이 확보되어야 박물관을 세우는 의미가 있다.

민주화와 관련된 자료에 비해 산업화 쪽의 자료는 부실하다. 시기적으로 산업화 쪽이 앞서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료 수집이 ‘불리’한 데다 산업화 세대는 당장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터라 기록 보존 같은 건 엄두를 내지 못했다. 6·25전쟁 발발 당시 20세였던 사람들의 나이는 이제 80세를 바라본다. 이들에게 왜 지난날을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느냐고 채근하는 것은 부질없다. 현대사 박물관이 서둘러야 할 것이 이들을 찾아가 생생한 체험을 수집하는 일이다.

최근 학계에는 ‘구술사(口述史)’라는 영역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영화계의 원로인 황정순 유현목 같은 분을 상대로 1950년대 한국 영화의 실상에 대해 구술을 받아 채록한 것도 그 범주에 속한다. 특정 집단과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기억은 어떤 역사자료보다 생생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들이 타계하면 소중한 체험은 그대로 묻혀버리고 만다. 더 늦기 전에 광복 직후의 혼란상과 6·25전쟁, 이후의 재건 과정에 대한 구술사적 자료 구축이 이뤄져야 한다. 학계의 자발적인 수집을 마냥 기다릴 게 아니라 현대사 박물관 추진 조직 같은 곳에서 적극적으로 앞장설 필요가 있다.

‘뼈저린 경험’ 채록 서둘러야

역사학자 김성칠 역시 6·25전쟁 직후 서울에 남아 공산 치하를 경험했다. 그는 ‘인민공화국 백성이 되어 보고 모두들 대한민국을 뼈저리게 그리워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지난 정권 때 세대 간 견해가 충돌하는 자리에서 나이 든 세대는 젊은 사람들로부터 ‘근거를 내놓아 보시라’고 추궁당하곤 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이렇다 할 반박을 하지 못했다. 열심히 일해 오늘의 한국을 일군 주역이지만 밖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게 뼈아픈 체험밖에 없기 때문일지 모른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진정한 소통은 어쩌면 산업화 세대가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할 ‘근거’를 내놓을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기억을 역사로 바꾸는 일은 그래서 이들에게 절실하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