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여우들의 전성시대

  • 입력 2009년 9월 13일 19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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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남자들은 여우 같은 여자를 사랑할까.’ 순전히 시간 때우러 들어갔던 서점에서 발견한 발칙한 책이다. 여우 같은 여자(bitch)란 자신을 남자보다 중하게 여기는 똑똑한 여자를 말한다. 남자가 전화하면 언제든 튀어나오는 ‘착한 언니’들과 달리 이들은 자기 생활에 바빠 남자의 전화를 기다리지 않는다. 시간이 나야 만나줄까 말까다.

여배우 소피 마르소를 닮은 저자 셰리 아고브는 “잡힐 듯 애간장만 태우는 여우야말로 남자의 사냥꾼 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가 인터뷰한 수백 명의 남자 중 90%가 30초 안에 속내를 들켰다며 인정했다는 거다.

하지만 결혼할 경우엔 문제가 달라진다. 현모양처를 원한다면 착한 여자를 택하는 게 합리적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머니가 등장해 “여우 같은 ×은 안 된다”고 반대할 공산도 크다. 쉽고 편한 여자와 결혼하면 안정된 가정은 보장돼도 짜릿한 행복을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남자의 속성이 어디 갈 리 없겠지만.

15일은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지 1년 되는 날이다. 무례하게 비유한다면 여우 같은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가 금융기업을 상징하는 것 같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합리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이 경기변동의 주요인이라고 했다. 금융기업들이 야성적 충동에 빠져 눈앞의 이익(여우 같은 여자)만 추구하며 서민(착한 여자)을 울려대자 정부(어머니)가 칼을 빼든 것이다. “정부는 부모처럼 야성적 충동을 제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야성적 충동’이라는 책도 지적했다.

리먼 파산 1년… 승자독식 세계로

그 후 1년간 ‘시장만능주의는 끝났다’ ‘탈규제의 영미식 자본주의는 종쳤다’ 심지어 ‘세계화도, 미국도 흔들린다’는 담론이 우리 사회에 출렁이고 있다. 케인스주의와 함께 정부의 ‘보이는 손’이 재림했다는 환호성도 들린다. 부자와 기업에 혹독한 세금을 물려선 공부하기 싫은 사람은 공부 안 해도 정부가 대학까지 보내주고, 일하지 않아도 정부가 평생 먹여주는 시대가 도래했다면 글로벌 위기가 아니라 글로벌 천국일 터다.

정작 미국에선 크게 변한 게 없다고 최근 뉴욕타임스가 지적했다. 골드만삭스같이 강한 기업은 정부 지원으로 덩치를 키워 엄청난 이윤과 보너스까지 챙겼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승자독식 시대’라고 지적했을 정도다. 경제사학자인 닐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는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에 ‘대마불사(too big to fail)’라는 문신만 새겨졌을 뿐”이라고 했다.

미 정부의 강력규제론도 말만 요란했지 실행된 건 많지 않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4일 리먼브러더스 파산 1주년을 기념해 금융개혁을 다시 촉구한다지만 개혁안대로 의회를 통과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여차하면 정부가 해결해 줄 테니 예전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모럴 해저드만 커졌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호시탐탐 여우를 노리는 남자들처럼, 과거를 곧잘 잊는 비합리적 인간 본성은 쉽게 안 변한다. 글로벌 위기 발생엔 이런 본성이 큰 작용을 했다. 어떤 규제가 나온대도 리먼브러더스 사태는 언젠가 반복된다고 보는 게 되레 합리적이다.

문제는 글로벌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서민들이다. 세계화 역시 뒤집히지 않아서 세계 어디서나 힘없고 착한 이들, 경직된 노동시장 탓에 취업 못한 청년들, 저학력 저숙련 저소득층이 타격은 제일 먼저 입고 회복세엔 제일 늦다. 막대한 재정지출로 위기를 수습해온 정부가 돈줄을 죌 경우 인플레이션과 증세의 고통까지 떠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친(親)서민 정부만 의지하다간 다 같이 가난해진 나라의 구호민(救護民)으로 비극적 생을 마감할 판이다.

그래서 다시 주목해야 할 것이 여우의 전략이다. 여우스토리도 여우 같은 여자의 관점에서 보면 그 여자는 자신을 위해 너무나 합리적이었다. ‘탁월한 정치적 판단’을 쓴 필립 테트록 교수에 따르면 고슴도치 같은 사람이 비전이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반면, 여우 같은 사람은 실용적이고 작은 변화에도 두루 적응해 문제 해결에 능하다. 비전이 안 뵌다고 공격받다 중도실용을 들고 나온 이명박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FDR도 여우 같은 리더였다

대공황 때 미국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FDR)도 여우과(科)로 꼽힌다. 그의 뉴딜정책은 대화와 통합에서 나오지 않았다. “다수결 민주주의는 야당의 허가를 요하지 않는다”며 당대에 필요한 정책을 관철시켰다는 ‘FDR’ 평전 저자의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몇 년째 선진국 문턱에서 헤매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정책은 수구좌파가 주장하는 ‘무조건 정부개입’이 아니다. 저학력 저숙련 저소득층을 포함해 국민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개혁과 시장을 키우는 규제완화가 중요하다.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21세기, 여우 같은 리더만이 글로벌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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