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시장 할머니의 눈물

  • 입력 2008년 2월 14일 20시 02분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훔치는 사진이었다. 설 연휴를 앞두고 재래시장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붙들고 생선 좌판 할머니가 우는 모습이 본보(2월 4일자)에 실린 뒤 나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그래도 이분이 제일 바라는 건 자손들이 공부 잘하는 거 아닐까요.”

내 속물적 의견에 동료 기자는 말했다. “경제일 거예요, 경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소원인데

둘 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다음 날 기사는 할머니가 “‘경기가 나아져야죠’ 되뇌면서도 대학 간 손자들이 좋은 직장 얻는 게 가장 큰 바람”이라고 전했다. 경제가 잘되고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넘어서는 것도 좋지만 내 자식이 공부 못해 좋은 일자리 못 구하면 그림의 떡인 것도 사실이다.

자식이 나보다는 잘살기를 바라는 게 사람 심리라면 “배워서 남 주느냐”며 자식 교육에 열성인 건 우리 문화다. 이를 치맛바람이니 사교육 광풍이니 비난도 높지만, 부지런히 공부하고 일해서 성취하는 걸 질시하는 아프리카 문화보다는 낫다. 다행히도 글로벌경제는 지식과 기술이 뛰어날수록 성장의 과실을 더 많이 가져가는 세계화로 내달리고 있다. 공부 잘한 형제 하나가 집안을 일으키고 그래서 나라도 이만큼 커진 우리로선 오히려 때를 만난 셈이다.

시장 할머니를 만난 뒤 이 당선인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서민생활에 도움이 되는 문제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지나치게 혈기왕성했던 인수위지만 ‘재래시장 옆 대형마트 금지’ 같은 규제나 ‘노인 일자리 수입 활성화’식 퍼주기 복지정책을 내놓진 않았다. 정부가 역주행 탁상공론이나 짜낸다고 공무원 늘리고, 이들을 평생 먹여 살린다고 혈세를 짜냈어도 5년간 분배의 형평성은 더 나빠졌다.

할머니도 알고 있듯 빈곤에서 벗어나는 확실한 길은 교육이다. 주류 경제학자들과 유엔, 세계은행,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은 저소득층 자녀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아 제 힘으로 성공해 계층이동을 하는 게 시간은 좀 걸려도 세계화의 혜택을 나누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실증적 연구 결과를 무수히 내놓고 있다. 세계의 교육개혁도 잘하는 아이들은 더 잘하게, 못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잘하게끔 학교와 교사에게 책임을 지우는 추세다.

이걸 전교조는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이라며 거세게 반대해 왔다. 새 정부가 영어 공교육 강화 못지않게 꼭 해야 할 일이 전교조의 반(反)교육적 교육관을 바로잡는 일이다. 자신이 맡은 학생의 잠재력을 최대한 살려낼 실력도, 열성도 없으면서 죽은 이념을 방패삼아 금밥통 지키기에만 혈안인 교사에게 더는 우리 아이들을 맡길 순 없다.

물론 대학을 나온다고 좋은 직장이 거저 주어지는 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신흥국가는 물론 홍콩과 싱가포르 경제가 불같이 일어나는데도 우리나라만 ‘괜찮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데는 시대착오적 노조가 큰 몫을 했다. “한국의 전투적 노조가 비정규직 확대와 임금 격차 심화에 기여했다”고 지난해 말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분석한 OECD는 지적했을 정도다.

이념은 빼고 ‘되는 정책’으로

참교육을 내건 전교조, 노동자 세상을 주장해온 강경노조가 실은 소외된 계층을 더 소외당하게 만든 이익집단이라는 사실은 이념과 현실의 괴리를 말해 준다. 고르게 잘사는 평등사회를 외치며 한줌밖에 안 되는 이들과 춤춰 온 현 정부는 역사적 문책을 받게 됐다. 그러나 이들이 달라졌다는 소리는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신물 나는 이데올로기 논쟁은 접고 이젠 현실을 보자. 시장 할머니도 원하는 대한민국은 노력한 만큼 대우받는 실력사회다. 좌파든 우파든 이런 결과를 내놓으면 성공이다. 평생 자식들을 위해 희생해 온 할머니 눈에 또다시 피눈물나게 만드는 세력은… 허본좌(허경영 씨)가 대통령이 됐다면 필시 사형감이다.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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