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기회인가, 아니면 위협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략 반으로 갈린다. 물론 아무 의견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세계화에 대한 가치평가는 미국에 대한 가치평가와 직결되곤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생존학자로 알려진 놈 촘스키의 저서 ‘불량국가’는 미국화처럼 알려진 세계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저명한 언어학자였던 촘스키가 국제문제에 대한 탁월한 분석가로서도 명성을 얻게 된 데는 그가 전 세계의 언어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키웠던 문화적 감성지수가 큰 기여를 했다. “미국화되는 세계, 그러나 미국 안에서 없어지는 세계”라고 할 정도로 세계에 대한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인식수준은 낮다. 미국인들이 인식조차 못 한 지역의 사람들은 이 같은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절대 권력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는 부정합이 존재하는 것이다. 촘스키는 거꾸로 세계의 눈으로 미국을 본다.
이 책의 원제는 ‘불량국가들(Rogue States)’이다. 국제법적 표준을 무시하는 불량국가란 사실은 복수의 개념이며, 미국이 그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거버 매코맥 호주국립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한이 ‘소프라노의 불량국가’인 데 비해 미국은 ‘바리톤의 불량국가’이다.
이라크전쟁은 물론 9·11테러가 발생하기도 전에 출간된 이 책은 1998년에 Z-매거진에 발표된 동명의 논문을 발전시킨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판서가 아니라 이라크전쟁에 대한 예언서였다. 이 책을 통해 촘스키는 ‘불량국가’라는 딱지 붙이기가, 결국 서양문명이 오랫동안 쌓아 왔던 국제법적 자기절제를 회피하기 위한 속임수일 뿐이고, 결국 문명자해적인 이라크전쟁과 같은 참사로 이어질 것임을 설파했던 것이다.
앞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쟁이 반성과 속죄를 필요로 하게 될 경우, 과연 누가 더 미국을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평가받게 될 것인가? 일찍이 촘스키는 미국의 베트남전쟁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당시 국방장관으로서 베트남전쟁을 이끌었던 로버트 맥나마라가 훗날 베트남전쟁이 미국을 위해 잘못된 것이었음을 고백했다. 그러나 그 고백은 원칙의 오류가 아니라 계산의 착오에 대한 반성이었을 뿐이다. 오늘날 이라크전쟁은 단순히 9·11에 대한 과도한 응징이나 잘못된 보복이 아니라 원칙의 오류를 수정하지 않은 미국 주도의 세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된 것이다.
김명섭 연세대 교수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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