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이해하기 20선]<9>불량국가

  • 입력 2006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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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특정한 사회 경제적 질서는 인간 제도의 틀 속에서 인간이 결정하여 만들어낸 결과이다. 따라서 그러한 결정은 수정될 수 있고, 인간의 제도 역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세계화는 기회인가, 아니면 위협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략 반으로 갈린다. 물론 아무 의견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지만. 세계화에 대한 가치평가는 미국에 대한 가치평가와 직결되곤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생존학자로 알려진 놈 촘스키의 저서 ‘불량국가’는 미국화처럼 알려진 세계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저명한 언어학자였던 촘스키가 국제문제에 대한 탁월한 분석가로서도 명성을 얻게 된 데는 그가 전 세계의 언어들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키웠던 문화적 감성지수가 큰 기여를 했다. “미국화되는 세계, 그러나 미국 안에서 없어지는 세계”라고 할 정도로 세계에 대한 일반적인 미국인들의 인식수준은 낮다. 미국인들이 인식조차 못 한 지역의 사람들은 이 같은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절대 권력에 따라 운명이 좌우되는 부정합이 존재하는 것이다. 촘스키는 거꾸로 세계의 눈으로 미국을 본다.

이 책의 원제는 ‘불량국가들(Rogue States)’이다. 국제법적 표준을 무시하는 불량국가란 사실은 복수의 개념이며, 미국이 그들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거버 매코맥 호주국립대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북한이 ‘소프라노의 불량국가’인 데 비해 미국은 ‘바리톤의 불량국가’이다.

이라크전쟁은 물론 9·11테러가 발생하기도 전에 출간된 이 책은 1998년에 Z-매거진에 발표된 동명의 논문을 발전시킨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판서가 아니라 이라크전쟁에 대한 예언서였다. 이 책을 통해 촘스키는 ‘불량국가’라는 딱지 붙이기가, 결국 서양문명이 오랫동안 쌓아 왔던 국제법적 자기절제를 회피하기 위한 속임수일 뿐이고, 결국 문명자해적인 이라크전쟁과 같은 참사로 이어질 것임을 설파했던 것이다.

앞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전쟁이 반성과 속죄를 필요로 하게 될 경우, 과연 누가 더 미국을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평가받게 될 것인가? 일찍이 촘스키는 미국의 베트남전쟁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당시 국방장관으로서 베트남전쟁을 이끌었던 로버트 맥나마라가 훗날 베트남전쟁이 미국을 위해 잘못된 것이었음을 고백했다. 그러나 그 고백은 원칙의 오류가 아니라 계산의 착오에 대한 반성이었을 뿐이다. 오늘날 이라크전쟁은 단순히 9·11에 대한 과도한 응징이나 잘못된 보복이 아니라 원칙의 오류를 수정하지 않은 미국 주도의 세계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된 것이다.

이 책은 유럽의 아메리카 정복과 서방의 냉전승리로까지 이어지는 도도한 서양문명사의 최첨단에 서 있는 미국의 야만과 오만에 대한 경고이다. 일찍이 애치슨이 “미국의 입장을 윤색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고 했던 국제법마저도 무시하는 미국화로서의 세계화, 그러한 세계화가 설사 좀 더 나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준다 하더라도, 절제되지 않은 무력사용을 앞세운 세계화는 결국 인류 전체에 엄청난 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는 침울한 예언이다.

김명섭 연세대 교수 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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