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긴급제언]김영호/"앞으로 2,3개월이 고비"

  • 입력 2000년 11월 12일 19시 20분


올해 초 경기호황과 벤처 열풍으로 모두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는 끝났다”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당시 김영호(金泳鎬) 산업자원부 장관은 “경제위기가 끝나지 않았다”며 일관되게 경고해 정부와 여당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불행하게도 최근의 경제상황을 보면 김 전장관의 예측이 맞아가고 있다. 8월 개각 때 물러난 김전장관을 만나 현 경제상황의 돌파구에 대해 고견을 들어보았다. 그는 경제학자로서의 이론적 무장과 짧은 기간의 장관직 경험을 바탕으로 해법을 제시했다.

―경고가 현실화되고 있는데….

“그렇다. ‘내년 이후 저성장 고물가 무역적자 자본유출증대 등의 위험으로 반전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제는 다수 의견이 돼가고 있는 것 같아 오히려 씁쓸하다. 한국경제의 앞날은 앞으로 2, 3개월이 결정한다. 여기서 잘못하면 만성적인 경제위기를 겪는 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형이 되거나 일본형의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W자형으로 내려가는 위기부분을 빨리 반전시켜야 한다.”

―왜 위기인가.

“최근 3년간의 무역수지 흑자는 비정상적인 것이다. IMF 관리 체제 때 기업들이 설비 및 기술투자를 하지 않고 허리띠를 졸라맨 채 밀어내기 수출을 했다. 반면 수입이 비정상적으로 줄어들었다. 그 결과 만들어진 무역흑자다.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95년 이후 수출채산성 교역조건 등을 자세히 살펴봐라. 계속 내리막길이다. 고유가는 이 시기를 앞당기고 있을 뿐이다. 또 월스트리트는 한국의 구조조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국내 상장기업의 외국인 지분이 30% 정도며 반도체 등 핵심산업은 50%를 넘고 있다. 이중 2%만 빠져도 주식시장이 휘청거리는데 10% 정도가 빠져나간다고 생각해봐라. 지금 ‘삐끗’하면 치명적인 상황이 올 수 있다. 특히 미국경제가 경착륙으로 가는 상황까지 벌어지면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정부대응이 어디서부터 빗나간 것인가.

“우선 IMF는 초기에 고긴축 고이자정책 그리고 국제결제은행(BIS) 규정 강요 등 채무자의 의무만 강조했다. 반면 채권자의 의무는 묻지 않아 한국경제의 재생에 큰 상처를 남겼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눈을 우리 정부로 돌리면 초기대응은 주어진 한계내에서 잘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 이후 중요한 실수가 몇 번 있었다. 첫번째 실수는 정부의 섣부른 ‘IMF 졸업선언’이었다. 백보 양보해서 국제금융위기를 1차적으로 넘겼다고 쳐도 국내금융위기와 경제전반의 위기를 넘긴 것은 아니었다. 정부의 IMF 극복 발언은 경제위기를 헤쳐나가는 가장 큰 자산인 사회적 위기감을 해체시켰고 국민의 기대수준을 높여버렸다. 일부 경제각료가 ‘한국 경제가 신경제에 접어들었다’고 말한 것도 실수였다. 두번째 실수는 99년 하반기의 경기부양책이다. 겨울은 겨울답게 보내면서 체력을 비축하며 봄을 기다렸어야 했는데 인위적으로 봄을 만들었다가 더 혹독한 겨울을 불러들인 것이다. 이는 마치 개복수술을 받던 중환자를 수술도 마치기 전에 다시 배를 꿰매고 100m 달리기를 시킨 꼴이다.”

―이번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평가는….

“빗발치는 여론 앞에서 칼은 뽑아야 했으나 내리치기는 쉽지 않고 힘들었을 것이다. 부실기업 못지않게 부실금융이 문제고, 부실정책이 문제다. 부실에 곪아있고 BIS 규정에 쫓기는 채권은행에 기업구조조정을 맡겨서는 기업의 산업경쟁력 측면을 제대로 살릴 수는 없다. 지금 은행은 ‘제 코가 석자’ 아닌가.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로도 기업을 회생시키지 못하고 결국 퇴출시킨 자체가 정책실패를 말해주는 것이다. 고도로 치밀하고 전문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이제 기업에 들이댔던 것보다 더 큰칼을 정부부문에 들이대야 한다.”

―공공부문 개혁을 말하는 건가.

“한전이나 포철의 민영화 정도가 아니라 정부시스템의 개혁을 말한다. 대통령의 비전과 관료주도의 행정적 질주 사이의 전략적 공백이 문제다. 전략없는 국가의 혼란이 심각하다는 느낌이다. 개혁의 엔진을 성장의 엔진으로 직결시키는 도덕적 전략적 시스템적 재무장이 시급하다. 위기극복과 선진국 진입을 직결시키는 엄청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고통분담 이상의 ‘감동의 정치’가 필요한데 고통분담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앞으로 필요한 대책은….

“세가지 병행전략을 강조하고 싶다. 첫째, 금융일변도 정책을 금융과 산업의 병행전략으로 바꾸는 것이다. 채권자와 기업의 윈―윈(win―win)전략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바다 속에서 마실 물이 없는 사람처럼 지금 금융권에서 기업으로 돈이 가지 않는 시스템에서 금융일변도의 구조조정은 안 죽일 기업을 죽이고, 죽일 기업을 살리게 될 위험성이 높다. 구조조정이 끝나고 산업을 생각하면 너무 늦다. 둘째, 기업 퇴출과 신기업 창출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지금 은행은 기업창출 금융시스템을 갖고 있지 못하다. 기업 퇴출로 증가된 실업자를 외국투자가가 백마를 타고 와서 구제해 주리라 기대하고 그 사이를 복지비 지출로 넘겨보려는 구상은 무책임한 것이다. 현재 한국에 들어오려는 외국기업은 대부분 금융 IT 포트폴리오형 기업이고 퇴출실업자는 구경제 사람들이다. 21세기형 신기업을 배가(培加)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노사협력―생산성 혁신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이 부분을 잘해줘야 한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약력▼

△경북대 경제학과, 일본 오사카시립대 경제 학박사

△1973년이래 경북대 교수, 경상대학장

△1985∼1995 일본 오사카시립대 정교수, 동 경대 정교수

△1997년 일본 경제학자들이 뽑은 ‘애덤 스 미스 이래 100대 세계경제학자’에 선정

△1996∼1999 정부 산업발전심의회 위원장

△2000년 1∼8월 산업자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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