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택칼럼]10월 13일을 기다리는 사람들

  • 입력 2000년 9월 27일 18시 57분


10월13일은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되는 날이다. 이날이 가까워 오면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수상자가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김대통령이 평화상을 받는다면 그것은 개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나라의 영예요, 민족의 경사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10월13일이 빨리 지나가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얘기는 김대중대통령의 정치행태, 특히 대북(對北)정책을 비판하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다. 김대통령이 노벨상에 연연해 성급하게 공적을 쌓으려고 하니까 북한에 끌려 다니게 되고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하고 있으니 상을 타든 못타든 10월13일이 빨리 지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아니, 타든 못타든이 아니다. 심지어 올해 못타면 내년에는 꼭 타려고 하여 ‘노벨상병(病)’이 1년 더 연장될 터이니 기왕 탈 것이라면 올해 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측도 있다.

정작 청와대측은 담담하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금년은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야당 등 일부에서 정략적 이유로 김대통령이 노벨상에 눈이 멀었느니 어쩌니 하는 것이 한심스러울 뿐이란다.

실제로 김대통령이 노벨상을 수상하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들 한다. 우선 김대통령의 공적으로 꼽히는 6·15남북공동선언 등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 노력은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함께 한 것이어서 수상하게 되면 두 사람이 공동수상하는 게 관례라고 한다. 지금까지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공을 인정하는 경우 양쪽 지도자에게 평화상을 주었다. 그러나 김위원장은 금년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더구나 북한은 아직도 미국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분류돼 있어 김위원장이 평화상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공적 내용으로 보더라도 남북정상의 6·15선언으로 이땅에 평화를 가져올 첫걸음을 뗀 것은 평가할 만하지만 아직 평화체제가 확립된 것이 아니므로 상을 주기에는 이르다고 보는 견해가 다수다. 그러니까 김대통령은 금년도 수상은 사실상 어렵고 평화정착의 실질적 진전이 이뤄진 내년에나 김위원장과 공동수상하는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인 전망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는 말한다. 2002년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올해보다는 내년에 받는 것이 더 ‘약효’가 있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여권 관계자도 있다.

그렇지만 누구도 정확한 전망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시상기준이나 조건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평화정착’이란 공적을 평가하는 문제도 완전히 평화체제가 갖춰지지 않은 상태일지라도 앞으로 평화정착을 위해 더 노력하라는 뜻으로 평화상이 수여된 예가 있다. 또 김대통령은 87년부터 올해까지 14번이나 후보로 추천됐으니까 과거의 공적까지를 고려한다면 단독 수상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김대통령이 평화상을 받는다면 한반도평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고조돼 남북관계 개선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따라서 정략적 계산을 배제한다면, 받을 수만 있다면 올해 받는 게 좋다.

김대통령이 수상한다면 그의 정치스타일이 달라질지 모른다. 우선 매사에 여유가 생길 것이다. 레임덕이나 퇴임 후에 대한 걱정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면 대북관계에서도 더 이상 성과에 급급해 서두르거나 일방적으로 양보한다는 비난을 듣지 않을 만큼 당당하면서도 탄력성 있는 정책을 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자신의 마음도 넓어져 ‘귀가 막혀 있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것이다. 야당에도 너그러워 정국경색증이 치유될 것이다. 인재등용의 폭도 넓어질 테니 실정(失政)의 대부분이 인사 잘못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수상자 발표일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동안이라도 남북문제는 물론 내정(內政)의 갖가지 갈등요인들이 순조롭게 풀려, 10월13일 오전 11시(한국시간 오후 6시)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로부터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대한민국 김대중대통령이라는 뉴스가 타전됐을 때, 김대통령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까지도 포함하여 모든 국민이 진정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축하의 박수를 보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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