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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만나는 다양한 창의성의 이야기로 한 스푼의 영감을 채워드립니다.


미술관에 가면 늘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온종일 작품을 지키고 서 있는 ‘지킴이’들입니다. 이분들은 관객이 작품에 너무 가까이 가지 않도록 보호하고 감시하는 역할도 하지만, 또 관람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마치 그림자처럼 저의 동선을 피해 움직이기도 합니다. 관객이 없을 때면 조용히 작품 앞에 서서 감상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도 있죠. 기분이 좋은 날이면 이분들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이런 ‘지킴이’의 시선에서 미술관의 풍경을 풀어낸 책이 나왔습니다. 패트릭 브링리가 쓰고 김희경, 조현주가 옮긴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최근 출간된 이 책을 보고 미술관에 가는 경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았습니다.갑작스러운 형의 죽음, 미술관 경비원이 되다이 책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합니다.2008년 6월. 형이 세상을 떠나자 나는 내가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

1993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비엔날레 전시장 독일관에 백남준(1932∼2006)은 설치 작품 ‘시스틴 채플’을 선보입니다. 전시장 가운데에는 나무 선반 위에 브라운관(CRT) 프로젝터가 무더기로 쌓여 있고, 빈 벽과 천장으로 영상이 가득 메워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무겁고 다루기 까다로운 CRT 프로젝터를 들고 선반 위 높은 곳에서 수일간 씨름하던 설치 스태프들이 지치자, 백남준은 이들의 숙소로 찾아가 조식에 달걀 하나씩을 추가 주문해줬다고 전해집니다. 어렵게 선보인 이 작품은 2022년 울산시립미술관의 소장품이 되었고, 지금은 서울문화재단 기획전 ‘언폴드엑스’전이 열리는 서울 중구 옛 서울역사 ‘문화역서울284’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전시된 이 작품의 형태는 사뭇 다릅니다. 백남준의 ‘현대판 시스틴 채플’먼저 1993년 ‘시스틴 채플’은 백남준이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독일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면서 제작한 작품입니다. 백남준이 첫 개인전을 연 곳이 바로 독일이었고, 작품 세계를 인정받아

오늘은 대구미술관에서 10월 31일 개막한 ‘렘브란트: 17세기의 사진가’전을 소개합니다.이 전시는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판 레인(1606~1669)의 판화를 모은 대규모 전시입니다. 최근에는 판화도 기술적 진화로 하나의 장르로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17세기 판화라고 하면 사이즈도 작고 색채도 제한적입니다.그래서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자고 생각하며 전시를 방문했는데, 우선 작품 수가 120점에 달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렘브란트 에칭이 290~300점이라고 하니, 전체의 절반 정도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인 셈입니다.전시를 담당한 이정희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로부터 자세한 전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렘브란트의 DNA는 에칭에 있다”우선 어떻게 이런 전시가 가능했을지가 저는 가장 궁금했고, 그것을 질문했습니다.대구미술관에 전시된 모든 작품은 네덜란드 렘브란트순회재단(Stichting Rembrandt op Reis)가 소장하고 있는 것인데요. 이 재단을 만든 얀

11월 1일 개막한 스웨덴 영화제에서 북유럽 사미족 출신 예술가 브리타 마라카트 라바의 예술과, 기후 변화에 저항하는 그녀의 싸움을 그린 영화 ‘사미 스티치’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제는 서울에서 11월 7일까지, 또 그 후 부산 인천 광주 대구로 이어져 11월 19일까지 열립니다. 자세한 일정표는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스웨덴 영화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최신 영화 9편이 상영되는 가운데, 미술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흥미로울 영화가 두 편 있습니다. 바로 ‘사미 스티치’와 ‘힐마’ 인데요. 두 영화는 특히 르네상스에서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단선적 미술사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면서, 세계적 미술 기관들이 ‘대안’을 찾는 와중에 발견된 흐름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겠습니다.“미술사는 시대에 따라 항상 변하는 것”영화를 살펴보기 전, 두 가지 인터뷰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관장인 글렌 로리 인터뷰(2019)이고

화가 정복수(66)의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갤러리 올미아트스페이스에 들어서면 47년 만에 다시 공개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정 작가가 부산 현대화랑에서 안창홍 작가와 1976년 함께 열었던 ‘2인전’에 단 한 번 전시됐던 작품, ‘청춘의 슬픔’입니다.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 그녀의 머리카락은 실처럼 굽이치고, 입은 옷의 무늬는 무언가에 베인 상처처럼 보입니다. 그녀의 주변을 간질이듯 눈물처럼 흐르는 실 가닥은 붙잡으면 허무할 지푸라기 같지만, 허공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듯 말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기록‘청춘의 슬픔’은 어떻게 47년 만에 이 전시장에 걸리게 된 걸까. 이번 전시 ‘자궁으로 가는 지도―I’은 정 작가가 지난 3, 4년간 그린 신작을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마지막 개인전을 3년 전 열었던 정 작가는 팬데믹을 지나며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작업해 왔다”고 했습니다. 전시는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하

화가 정복수(66)의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갤러리 올미아트스페이스에 들어서면 4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정복수가 부산 현대화랑에서 안창홍 작가와 1976년 함께 열었던 ‘2인전’에 단 한 번 전시됐던 작품, ‘청춘의 슬픔’입니다.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 그녀의 머리카락은 실처럼 굽이치고, 입은 옷의 무늬는 마치 무언가에 베어 벌어진 상처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주변을 간질이듯 눈물처럼 흐르는 실 가닥들은 붙잡으면 허무할 지푸라기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허공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기록‘청춘의 슬픔’은 어떻게 40여 년 만에 이 전시장에 걸리게 된 걸까. 이번 전시 ‘자궁으로 가는 지도 - I’는 정복수 작가가 지난 3-4년간 그려온 신작을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마지막 개인전이 3년 전이었던 정복수 작가는 팬데믹을 지나며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단단한 석회석으로 만든 항아리. 은으로 만든 뚜껑에는 바람 무늬와 용 조각이 얹혀있고, 이 항아리를 담은 참죽나무 상자의 네 귀퉁이에는 구름 장식이 달려 있습니다. 용, 바람과 구름. 이 장식들은 세상을 떠난 이를 추모하고, 생을 다한 육신이 하늘로 잘 올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이 물건은 장례 의식에 사용되는 뼈 항아리, 골호(骨壺) 입니다. 이것을 정성스레 만든 사람은 1세대 공예가 유리지(1945~2013)이며, 아버지 유영국(1916~2002)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랫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아버지의 마지막을

남태평양 타히티섬으로 간 후기 인상파 화가로 익숙한 폴 고갱(1848∼1903)은 원래 프랑스 파리에서 고소득을 올리는 주식 중개인이었습니다. 부업이었던 예술 작품 거래로도 짭짤한 수익을 내고 있었죠. 그러다 1882년 파리 증권거래소가 폐쇄 직전까지 가는 등 프랑스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맞으면서 그도 위기에 처합니다. 이런저런 일을 해봤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고, 결국 고갱은 1885년 덴마크에서 함께 있던 가족을 뒤로하고 홀로 파리로 떠나 전업 화가가 됩니다. 5년 뒤 고갱이 그린 정물, ‘창문 앞 과일 그릇과 맥주잔’은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수수께끼 가득한 그림가장 먼저 거슬리는 건 오른쪽 아래 그려진 맥주잔과 칼입니다. 그 옆 과일은 입체감을 뽐내며 그림 밖으로 쏟아질 듯 묘사되어 있는데, 맥주잔 혼자 어두운 방 안에 놓인 듯 짙은 색입니다. 빛이 전혀 없어 마치 종이를 오려서 세워 놓은 듯 납작하게 그려져 있죠. 그 옆 칼 역시 기울어진 각도가 아니었다면 입체감을 전혀 느낄

현대미술을 비롯한 문화·예술의 다양한 영역에서 ‘정체성’이라는 주제는 끊임없이 다뤄지고 있습니다.‘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을 찍는 신디 셔먼의 각양각색 자화상부터, 루이스 부르주아가 복잡한 어린 시절에서 영감을 얻은 거대한 거미 엄마, 흑인 여성이 겪은 차별의 역사에 자신의 모습을 겹친 카라 워커의 설탕 조각까지.많은 예술가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삶의 많은 문제를 이해하는 실마리이자, 세상을 바라보는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이 비슷한 얼굴을 하고, 같은 문화를 공유하며, 동일한 정체성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정체성’이라는 말은 다소 멀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 역시 그랬다는 걸 이번 캐나다 몬트리올에 다녀오면서 알게 되었는데요.한국계 큐레이터인 한지윤 씨가 예술 감독을 맡은 제18회 모멘타 비엔날레를 지난달 25일부터 29일까지 다녀왔습니다. 현장 분위기를 소개합니다.약탈한 땅 위 이민자의 나라우리 미술관은 동의 없이 넘겨진 토착민의 땅

행복한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날, 독자 여러분께 인사드리게 되어 기쁩니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아름다운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네요.결실은 한 시절의 마무리이자,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순간이기도 하죠.연휴 동안 한 해를 돌아볼 독자 여러분을 위해 안젤름 키퍼의 ‘가을’을 첫 사진으로 준비해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대전의 문화공간 헤레디움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전시에 관한 이야기는 추후에 천천히 다루기로 하겠습니다.오늘은 지난 시간 동안 독자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감상을 ‘다시 보기’로 모아보았습니다.제가 영감한스푼을 하기 전 ‘김민의 그림이 있는 하루’ 시리즈를 연재했었는데요. 이 시리즈의 마지막 편을 독자 여러분의 댓글로 구성한 적이 있답니다. 그때 저도 하나하나 돌아보며, 우리가 그림을 통해 참 많은 것을 나눌 수 있다고 느껴서 지금까지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올해 ‘영감한스푼’ 구독자 여러분은 마음속에 어떤 예술을 품었는지, 한 번 같이 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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