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한국行?… 외국인 건보 혜택 ‘무임승차’ 막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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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하자마자 피부양자로 등록
치료만 받고 출국하는 사례 많아
정부, 피부양자 자격 강화 추진
‘6개월 이상 체류’ 조건 만들 듯

게티이미지코리아
게티이미지코리아
60대 외국 국적 A 씨는 2021년 10월 한국에 입국한 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동생의 피부양자로 등록했다. 이후 A 씨는 같은 해 11월부터 이비인후과 질환인 외이도염 치료 등으로 총 11번의 병원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받으면서 A 씨가 받은 건강보험 혜택은 총 1200만 원에 달한다. 치료를 마친 A 씨는 다음 해인 2022년 1월 다시 해외로 출국했다.

재외동포인 70대 여성 B 씨 역시 같은 방식으로 건강보험 혜택을 누렸다. B 씨는 2020년 2월 한국에 들어와서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인 사위의 피부양자로 등록했다. 같은 해 3월부터 위암 등으로 병원 진료를 17번 받았고 총 7000만 원의 건강보험 혜택을 받았다. 2022년 5월 치료가 끝나서 B 씨는 한국을 떠났다.

● 건보 혜택만 받고 돌아가는 ‘얌체’ 외국인

A 씨와 B 씨는 모두 외국인 건강보험 피부양자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건강보험 혜택을 누린 이들이다. 지금까지 외국인과 외국 국적을 가진 재외동포, 한국 국적을 가졌으나 해외 장기체류 중인 재외국민은 국내에 들어오는 즉시 피부양자(부양자인 직장 가입자 아래 등록돼 건보 적용을 받는 사람)가 될 수 있었다. 앞으로는 입국 후 6개월이 지나야 건보 적용을 받도록 기준이 강화된다. 재외동포, 즉 한국인이지만 해외에 장기체류 중인 영주권자도 앞으로는 입국 후 6개월이 지나야 건보 가입이 가능하다.

그동안 해외에 살다가 아프면 잠깐 한국에 들어와 건강보험 혜택만 받고 다시 출국하는 재외국민과 재외동포, 외국인들에 대한 ‘무임승차’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가 피부양자 가입 자격을 강화하기로 하면서 앞으로는 이들이 기존처럼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외국인은 내국인과 동일하게 △직장가입자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 △지역가입자 등 3가지로 나뉜다.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전체 외국인은 총 131만5474명이었다. 지역가입자와 직장가입자는 각각 60만6901명(46.1%), 51만8626명(39.4%)이었다.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는 18만9947명(14.5%)이었다.

피부양자 가입 기준은 내외국인에게 모두 동일하다. 직장인의 배우자 자녀 부모 등이면서 연소득 2000만 원 이하 등의 소득 및 재산요건을 충족하면 내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관계 없이 피부양자가 될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건 현행 제도상 외국인 피부양자는 해외에 살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바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해외에 머물다가 아플 때만 잠시 국내에 들어와서 피부양자로 등록한 뒤 건보 혜택을 받고 다시 출국하는 외국인과 재외동포, 재외국민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외국인 피부양자 제도는 외국인 지역가입자와도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인 지역가입자의 경우 2018년 12월부터 국내에 최소한 6개월을 살아야만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즉, 같은 외국인이더라도 지역가입자에게는 최소 체류 기간이라는 제한이 있는데 외국인 피부양자에게는 제한을 두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 최소 6개월 이상 국내 거주해야 혜택 받도록
현재 국회에는 외국인 피부양자의 가입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외국인 피부양자로 가입할 때 지역가입자와 마찬가지로 ‘국내 거주 6개월 이상’이라는 조건을 두자는 것이 골자다. 국민의힘 송언석, 주호영 의원이 2021년 1월과 12월에 각각 발의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역시 외국인 피부양자의 가입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정부는 외국인 피부양자 중 배우자와 19세 미만 자녀에 대해서는 최소 체류 기간을 적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한국에 온 주재원, 외교관의 배우자나 미성년자 자녀가 입국한 뒤 바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6개월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다. 이들의 경우 현재처럼 입국 즉시 피부양자로 가입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외국인 피부양자 가입 기준이 강화되면 연간 9880명의 외국인 피부양자가 건보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 입국한 지 6개월 이내에 피부양자로 가입한 외국인이 연간 2만4842명(2019∼2021년 연평균)인데, 이 중 직장가입자의 배우자와 19세 미만 자녀(1만4962명)를 제외한 수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외국인 피부양자 자격 강화는) 일부 외국인의 진료 목적 입국을 막기 위한 것으로 대다수 외국인에게는 영향이 없다”며 “건강보험 제도가 악용되는 사례를 막고 외국인 지역가입자와의 형평성을 높여서 건강보험 제도의 공정성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외국인#건보료 혜택#무임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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