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그러면 못 쓴다, 길게 봐라”… 어머니는 정치인생의 길잡이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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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총리, 눈물의 사모곡
농사일-채소장사로 7남매 키워… 평생 검소한 삶 기려 조용한 장례

검은 넥타이 매고 국무회의 주재 전날 저녁 모친상을 당한 이낙연 국무총리(앞줄 왼쪽)가 26일 검은 
넥타이를 맨 채 해외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국무위원들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검은 넥타이 매고 국무회의 주재 전날 저녁 모친상을 당한 이낙연 국무총리(앞줄 왼쪽)가 26일 검은 넥타이를 맨 채 해외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국무위원들과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낙연 국무총리(66)는 어머니 영정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눈을 계속 끔뻑였다. 무일푼에서 자신을 ‘정승’으로 만든 어머니의 부재를 예감하고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이 총리는 26일 오전 검은 넥타이를 매고 국무회의를 주재했다. 그 뒤 곧바로 어머니 진소임 여사의 빈소에서 문상객을 맞았다. 브라질 방문 도중 93세 노모의 응급실행을 전달받았지만 예정된 일정을 모두 소화한 뒤 21일 귀국했다. 이 총리는 25일 저녁 임종을 지켰다.

이 총리의 사모곡은 정치권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이 총리를 포함한 7남매(4남 3녀)가 팔순을 맞은 어머니에게 드린 사랑의 글을 모아 ‘어머니의 추억’이란 책을 펴냈다. 진 여사는 두 명의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뒤 장남인 이 총리를 어려운 형편 속에 키웠다. 경제력이 충분치 않았던 아버지를 대신해 농사일과 채소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끌었다. 가을 농사를 마치면 집에서 6∼7km 떨어진 영광군 백수해변까지 게를 잡으러 다녔다. 다음 해 여름까지 먹을 밑반찬거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이 총리는 “어머니는 이 넓은 영광 법성포를 다 헤집으며 나를 키웠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이 총리는 2014년 전남도지사에 취임하며 어머니를 관사에 모셨다. 중학교 시절 고향인 전남 영광을 떠나 광주로 유학을 떠난 뒤 약 50년 만이었다. 당시 이 총리는 참모진에 “전남도지사 당선보다 더 기쁜 것은 50년 만에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것”이라고 자주 말했다.

정치 인생의 고비가 찾아올 때마다 길잡이가 된 것도 어머니였다. 이 총리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을 맡았지만, 2003년 민주당 분당 뒤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았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사람을 두세 차례 보내 장관직을 제의하면서 신당 참여를 권유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어머니는 “사람이 그러면 못쓴다. 길게 봐라”며 만류했다고 한다.

정치인과 행정가의 길을 걸으면서도 이 총리는 종종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총리는 국회의원 시절 대한민국 지방의 현실에 대해 “지방분권은 고향에 홀로 살고 있는 ‘늙은 어머니’ 같다. 출세한 자식(수도권)이 (지역을) 항상 보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조의금을 받지 않았고, 조화는 대통령과 5부 요인, 각 당 대표, 부총리, 전 총리가 보내온 것을 제외하고는 돌려보냈다. 총리실 등 정부 부처 공무원들에게도 간단한 조문만 받았다. 평생 검소한 삶을 산 어머니의 뜻을 기리기 위함이라고 총리실 관계자는 전했다.

빈소에는 26일에만 정치인 등 1000명 이상의 조문객이 다녀갔다. 해외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조문했다. 이 총리는 27일에도 집무실과 빈소를 오갈 예정이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17호실(02-3410-6917). 발인은 28일 오전 7시.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이낙연 국무총리#국무회의#사모곡#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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