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이냐… 선주사 격려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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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코 선사 “배 만들어줘 감사”… 성동조선에 9000만원 후원금 쾌척
조선업 수주 가뭄속 ‘깜짝 희소식’

소티리오스 카사라스 스콜피오 탱커스 수석감독관(오른쪽)이 한수연 성동조선해양 마리아차코스어린이집 원장에게 기부금 4만 달러를 전달하고 있다.  성동조선해양 제공
소티리오스 카사라스 스콜피오 탱커스 수석감독관(오른쪽)이 한수연 성동조선해양 마리아차코스어린이집 원장에게 기부금 4만 달러를 전달하고 있다. 성동조선해양 제공

“회사 직원들이 봉사활동 하는 곳이 있습니까?”

경남 통영의 중형조선소 성동조선해양에서 2년 반 가까이 파견 근무를 하고 있는 모나코 선사 스콜피오 탱커스의 수석감독관이 지난주 성동조선 측에 갑자기 문의를 했다. 스콜피오사가 건조를 맡긴 11만5000t급 정유운반선의 최종 점검을 성동조선이 끝마쳤을 때였다. 스콜피오사는 2014년 이후 18만 t급 벌크선 6척, 11만5000t급 유조선 2척 등 선박 8척을 성동조선에 발주한 ‘단골’ 선주사다.

20일 성동조선에서 열린 선박 명명식에서 선주사는 8만 달러(9000여만 원)의 후원금을 쾌척했다. 이날 선주사 측은 성동조선 사내 어린이집에 4만 달러, 임직원 복지기금으로 2만 달러, 통영시와 경남 고성군에 이웃돕기 기금으로 1만 달러씩을 전달했다.

선주사 측은 “선박을 성공적으로 건조해준 성동조선 근로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 어린이집에 후원하는 기부금은 시설 개선에 쓰여 조선업 근로자들이 자녀들을 마음 놓고 맡기고 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전했다.

이처럼 선박을 발주한 선주사가 조선소에 거액의 기부금을 쾌척하는 사례는 해운·조선업 호황기에 심심치 않게 있었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1983∼2003년 선주사에서 받은 기부금이 220만 달러(약 24억6000만 원)나 됐다. 2011년 독일의 한 선주사는 현대삼호중공업에 발주한 배를 가져갈 때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며 특별히 주문한 와인 1만4400병을 협력사를 포함한 전 직원에게 한 병씩 돌렸다. 2012년 스웨덴의 한 선주사는 조선소의 녹지 조성에 써달라며 삼성중공업에 기부금 5만 달러를 건네기도 했다.

선주사가 계약금과는 별도로 격려금이나 기부금 명목으로 ‘목돈’을 내놓는 데에는 단순한 감사의 뜻 말고도 다른 이유도 있다. 호황기에는 조선사가 납기일을 앞당겨 선박을 일찍 완성할수록 선주사가 배를 운용하는 날짜도 빨라져 이득을 본다. 조선사에 잘 보여야 할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조선업계에 불황의 그늘이 드리우면서 이런 선주사들의 ‘기부 문화’는 자취를 감췄다. 오히려 선박 인도시기를 늦추거나 인도 지연을 이유로 수주 계약을 취소하면서 애를 먹이고 있다. 선박 인도 시점에 계약액의 최대 90%를 받는 ‘헤비테일’ 방식으로 수주 계약을 맺은 조선사들로서는 인도 날짜를 미루면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선주사가 기부금을 냈다는 얘기는 몇 년 만에 처음 듣는다. 큰돈의 기부금을 약속하며 배를 하루라도 빨리 지어달라고 사정할 때와 비교하면 요즘은 격세지감을 느낄 뿐”이라고 말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선주사#격려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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