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간 ‘삶의 질’ 수치로 환산해보니…경제성장률 절반도 못 미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6일 14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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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과 474. 비행기 모델명이 아니다. 최근 9년간 정부가 내세웠던 경제지표 달성 목표다. 이명박 정부는 ‘747’(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 박근혜 정부의 ‘474’(4%대 잠재성장률, 70%대 고용률,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이루겠다고 국민들과 약속했다.

결과적으로 공약은 지켜지지 못했다. 하지만 공약이 달성됐다고 해도 국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졌으리라고 장담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삶의 질이 높아지려면 단순히 부(富)가 많아진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쾌적한 환경 속에서 느끼는 풍요로운 행복감이 높은 삶의 질이다.

철학적이기까지 한 이런 질문의 답을 통계에서 찾을 수 있을까. 정부와 민간 학회가 오랜 고민 끝에 그에 대한 답을 처음으로 내놨다. 15일 ‘한국 삶의 질 학회’가 통계청이 제공하는 데이터를 토대로 처음 발표한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에 따르면 수치로 환산한 한국인의 ‘삶의 질’은 최근 9년간 11.8% 상승했다. 같은 기간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8.6% 증가했다. 삶의 질이 나아진 수준이 경제성장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학회는 한국인의 삶의 질을 측정할 수 있는 12개 영역, 80개 지표를 활용해 종합지수를 작성했다. 지수에는 1인당 국민총소득(GNI) 등 객관적 지표가 56개(70%), 일자리 만족도 등 주관적 지표가 24개(30%) 반영됐다.

영역별 지수를 살펴보면 교육(23.9%), 안전(22.2%), 소득·소비(16.5%), 사회복지(16.3%) 등은 평균(11.8%)보다 증가율이 컸다. 그러나 고용·임금(3.2%), 주거(5.2%), 건강(7.2%) 등은 평균보다 낮은 증가율을 보였다. 특히 가족·공동체(―1.4%) 영역은 오히려 뒷걸음질 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자살률과 한 부모 가구 비율이 상승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2006년 21.8명이었던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015년 26.5명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한 부모 가구 비율도 8.8%에서 9.5%로 높아졌다.

이번 작업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에 관련 통계를 만들겠다고 한 뒤 9년 만에 마무리됐다. GDP, 실업률처럼 표준화된 국제 기준이 없어 자의적 통계라는 지적도 있지만 양적 성장에만 집착해온 한국 사회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는 의미가 있다.

본보는 201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더 나은 삶의 지수’(BLI·Better Life Index)를 개발한 엔리코 지오바니니 로마 토르베르가타대 교수(전 OECD 통계국장), 윤종원 주OECD한국대표부 대사, 유경준 통계청장과 대담을 통해 ‘국민 삶의 질’ 측정의 의미를 짚어보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 심도 깊은 논의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정부와 학회가 공동으로 웰빙 측정 지수를 만들게 된 이유는.

A. (유 청장) 통계청은 2011년에 국민 삶의 질 지표 개발에 착수했다. 2014년 홈페이지를 개설해 개별 지표값을 보여줬다. 하지만 삶의 질이 얼마나 나아졌는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종합지수에 대한 요구가 국회, 언론 등에서 지속됐다. 코스피만 보면 주식시장이 좋은지 나쁜지를 한 눈에 알 수 있듯, 지표 숫자만으로 삶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종합지수가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사회적 관심도 끌어 올릴 수 있다.
Q. ‘국민 삶의 질’ 종합지수에 활용된 지표들이 삶의 질을 측정하는 데 적절하다고 보는가.

A.(지오바니니 교수) 그렇다. 한국 통계청은 시민사회와 협력해서 굉장히 좋은 사례를 남겼다. 무엇보다 정부 주도의 톱다운(Top-Down) 방식이 아니라 각계 전문가, 시민사회와 정부의 대화와 논의를 통해 통계를 만들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Q. 삶의 질을 지표로 만들어 보여주자는 논의에 대해 OECD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A.(윤 대사) OECD가 2011년 ‘더 나은 삶의 지수(BLI)’를 도입해 발표할 당시에도 반대가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GDP의 한계를 보완하는 지표라는 데에 모두가 공감한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다면적인데 BLI가 이를 보여주는 좋은 지표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각 나라별로 보고서 만들 때 BLI를 맨 앞에 넣는다. 각 나라가 삶의 질과 관련해 어떤 부분이 부족하고 지 무엇을 염두에 둬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Q. 삶의 질 측정결과를 국가정책에 활용하고 있는 모범사례가 있는지.

A.(지오바니니 교수) 이탈리아다. 이탈리아는 정부 예산안에 삶의 질 지표가 반영되도록 지난해 법를 만들었다. 정부가 매년 4월 의회에 경제재정 3개년 계획을 보고할 때 삶의 질 지표가 과거 3년간 어떻게 변했고, 또 향후 3년간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한 내용을 밝힌다. 또 매년 2월 예산안이 의회를 통과하면 정부는 삶의 질 지표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Q. 삶의 질 측정이 국가정책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위한 선결과제는 무엇인가.

A.(유 청장) 아직도 경제성장률이 국가 경제정책의 최우선 잣대이자 가치인 게 현실이다. 정부 정책을 짤 때 경제지표를 앞세우는 고정관념을 벗어던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동안 양적인 성장에 치중하다 보니 국민들의 질적 만족도는 떨어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A.(윤 대사) 삶의 질이 개선되는 속도가 경제 성장보다 느리다. 양적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질적 성장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한국 사회가 변곡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Q. 대선 후보들은 삶의 질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던져야 하나.

A.(유 청장) 이번에 발표된 국민 삶의 질 지표는 질적 성장을 추구하자는 화두를 던진다. 아젠다에 대한 열띤 논의와 이를 통한 다층적 정책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약화되고 있는 가족·공동체를 보완할 사회 안전망 확충도 절실하다.
세종=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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