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166만 원짜리 일자리의 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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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차장
이상훈 경제부 차장
 2004년 일본 경제산업성은 21세기 자국 경제를 이끌 산업을 육성하겠다며 ‘신산업 창조전략’을 발표했다. 복지, 환경, 에너지 등을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로봇 산업 등을 집중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언뜻 봐서는 한국의 정부 부처들이 1년에도 몇 개씩 쏟아내는 ‘그렇고 그런’ 식상한 정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본은 13년 전 마련한 청사진을 차곡차곡 실행했다. 2005년 일본 정부는 전국의 로봇 연구자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로봇정책연구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미래 로봇 산업의 키워드로 고령화를 꼽았다. 1인 가구, 그중에서도 홀몸노인 가구가 늘면 필연적으로 간호, 청소 등을 맡을 로봇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간병로봇 개발에 착수했다. 매년 예산을 투입해 간호·복지로봇 개발 촉진 사업을 시작했다. 국가 프로젝트로 사업자를 선정해 로봇 개발비를 지원했다. 간병로봇에 공적보험을 적용해 로봇 이용료의 최대 90%까지 정부가 지원해 주는 방안도 마련했다.

 10년 넘게 추진된 정책의 열매는 굵고 달았다. 과거에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서비스 로봇 시장이 2020년에 1조 엔(약 10조3000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올 들어서는 ‘일본형 개호(介護) 패키지 수출’ 정책까지 등장했다. 일본 정부가 베트남, 몽골 등 개발도상국에 노인 간호 제도를 소개하면서 간호 인력 등이 진출하고, 요양 및 인력교육 시설을 지으면서 간병로봇 등 관련 상품을 수출한다. 간호, 교육, 전자 분야 등의 일자리가 저절로 창출되는 효과도 얻었다.

 일본의 행보는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 묵직한 시사점을 준다. 복지와 경제 성장은 양립할 수 없다는 이분법적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교훈이 그것이다. 일본의 로봇 산업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상에 없는 제품을 개발해 국민의 생활수준을 높이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생생히 보여준다.

 우리도 이런 구상은 갖고 있었다. 2012년 7월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발표한 ‘5000만 국민행복플랜’에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통해 국민의 자립·자활을 이끌어내고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현 정부가 추진했던 복지정책은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현금을 쥐여주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연말마다 국회와 정부가 대립했던 누리과정 예산이 대표적이다. 인공지능(AI) 등 신산업 육성은 지지부진하고 기존 산업은 구조조정의 늪에 빠졌다.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앞으로는 달라질까.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공약만 놓고 보면 회의적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회복지 등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131만 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밝혔다. 복지 분야가 새로운 일자리 개척 분야인 건 맞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못 된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지난해 한국의 직업 중분류 72개 분야 중에서 사회복지 분야의 평균 임금은 166만 원으로 71위에 머물렀다.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등 복지 수요 증가로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의 월급은 100만 원대에 머물러 있다. 이들 일자리를 신성장동력 분야와 어떻게 연계할지, 처우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논의도 없다. 다른 후보들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제대로 된 구상조차 내놓지 않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일자리 대통령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무 일자리나 만드는 대통령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젊은이들이 앞다퉈 취업하고 싶을 정도의,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나랏돈으로 취로사업 수준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으로는 일자리, 복지, 성장 가운데 그 어떤 문제도 풀 수 없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january@donga.com
#일본 경제산업#로봇정책연구회#박근혜#5000만 국민행복플랜#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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