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잊혀진 세대’ 2000년대 청년들의 경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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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 기록된 사실은 그것뿐이다.―‘디 마이너스’(손아람·자음과모음·2014년) 》
 
 3월 대학 교정은 겨울과 봄이 교차되는 곳이다. 따뜻한 봄바람 속에 옷깃을 여미게 하는 칼바람이 숨어 있고, 개나리가 꽃망울을 터뜨릴 때 철 지난 눈이 내리기도 한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것처럼.

 그해 봄날도 풍물패 친구들의 꽹과리 장구 소리가 요란했고, 잔디밭엔 게임에 푹 빠진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넘쳐 났다. 캠퍼스의 평화는 곤봉, 방패로 무장한 경찰들의 등장으로 단숨에 깨졌다. 대강당 앞 수백 명의 경찰과 학생들의 대치는 오래가지 못했다. “끌어내”라는 경찰 간부의 명령이 떨어지자 30분도 안 돼 상황이 정리됐다. 2002년 3월 23일 고려대에서 전국공무원노조가 기습적으로 출범식을 열었던 날의 기억이다.

 지난주 열린 ‘최순실 게이트’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서 이화여대 경찰력 투입을 두고 설전이 벌어졌다. 누군가는 “민주화 이후에는 없었던 일”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학내 경찰 투입은 문민정부가 들어섰을 때도, 야당이 집권했던 1998년 이후에도 반복됐다. 단지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역사는 한번에 미래를 보여 주지 않는다. 미래로 나아가는 듯하다가도 이화여대 사태처럼 과거로 역주행하기도 한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시간의 나선 운동이 반복되면서 미래가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기억 저편으로 잊혀진다.

 손아람의 소설 ‘디 마이너스’는 잊혀진 2000년대 청년들의 삶을 다룬다. 21세기를 앞두고 정권이 ‘민주적’으로 교체됐고, “학생운동은 끝났다”라는 사람들의 평가에도 과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운동권으로 살아가려 했던 젊은이들의 얘기다. 작가의 말마따나 그들의 얘기는 역사 애호가들의 관심 밖이다. 앞선 ‘86세대’처럼 정권을 잡아 보지도 못했고, 대다수는 학점과 취업의 틈바구니에서 헤매다 기성세대에 편입해 버렸으니까.

 그래도 이 소설이 의미 있는 이유는 과거를 망각한 이들을 향한 경고를 담고 있어서다.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를 비판하며 “우리가 절대 선(善)”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스스로 역사 역주행을 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디 마이너스#손아람#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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