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찍었냐’며 감탄…보지 않고도 만져보고 느낀 뒤 찍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6일 20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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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김경식 씨가 6년간 써온 자신의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고 있다. 김 씨의 뒤로 그가 찍은 사진들이 걸려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시각장애인 김경식 씨가 6년간 써온 자신의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고 있다. 김 씨의 뒤로 그가 찍은 사진들이 걸려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햇빛은 눈으로 보지 않고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얼굴에 비쳐 오는 햇살의 방향으로 피사체 중심을 잡고 하늘을 도화지 삼아 그림 그려 가듯 사진을 찍는답니다."

2일 서울 종로구 북촌로 '우리들의 눈' 갤러리에서 만난 김경식 씨(56)가 사진이 걸려 있는 하얀 벽을 더듬으며 이렇게 말했다. 들꽃 사진이 담긴 검정색 액자 틀 오른쪽 하단엔 점자가 새겨진 투명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 김 씨가 자신이 찍은 사진을 알아볼 수 있도록 갤러리 측이 마련한 표시였다.

지난달 29일부터 이곳 갤러리에선 특별한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후원하는 사단법인 '우리들의 눈' 프로젝트에 참여해 온 김 씨가 4년간의 수련을 거치고 사진작가로서 데뷔하는 자리다. 그가 찍은 들꽃 사진 50여 점은 15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김 씨는 안내견 '풍요'와 함께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왔다. 도랑가에 피어 있는 솔새, 공원에 핀 강아지풀과 물망초, 토끼풀 등을 어루만지며 느낀 뒤 근접 촬영한다. 그래서 그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으면 볼 옆에 풀잎이 닿는 느낌이 든다. 손톱만 한 들꽃이 하늘을 배경으로 홀로 주인공처럼 우뚝 서 있기도 하다. 그렇게 찍은 사진 수천 장을 김 씨는 멘토인 박병혁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와 함께 매주 다시 검토하며 선별했다.

김 씨의 '사진작가' 인생은 2009년 상명대에서 시각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진 교실 '마음으로 보는 세상'에 참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엔 봉사자가 옆에서 모든 상황을 설명해 주고 그에 따라 셔터만 눌렀다. 그땐 처음이어서 모든 게 새롭고 재밌었지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회의감을 느꼈다. 초점이 엇나가거나 비뚤어진 사진도 우연성을 살린 작품으로 볼 수 있지만 김 씨는 자신이 의도한 구도로 '자신만의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는 우리들의 눈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사진 이론 수업을 듣는 등 체계적으로 공부했다. 접사와 역광은 그만이 살릴 수 있는 기술 중 하나였다. 김 씨는 "사람들이 내게 '마음으로 찍었느냐'며 감탄하는데 사실은 아니다"라며 "만져보고 느낀 뒤 찍은 거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2001년 '문예한국'에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한 김 씨는 사진을 알기 전엔 글로 고통을 승화했다. 글을 쓸 때는 고통을 되새겨야 해 괴로웠지만 사진은 달랐다.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집 밖을 나설 때면 마음이 한결 가볍고 즐거웠다. 김 씨는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기억이 반가워 토끼풀과 강아지풀 사진을 즐겨 찍는다. 무엇보다 이 풀들은 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그는 "사람들이 무심코 짓밟고 지나가도 굴하지 않는 모습이 좋다"라며 "나 또한 힘든 시간을 겪어 왔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하며 매일 꿋꿋이 살아간다"라고 전했다.

선천적 악성 염색체 이상으로 녹내장을 앓던 김 씨는 13세 때 교통사고로 시력을 모두 잃었다. 이후 심장판막이식수술도 두 차례나 받았지만 1986년 가톨릭 맹인 선교회에서 만난 부인과 결혼하며 역경을 함께 헤쳐 나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글과 사진을 사람들과 공유하며 스스로가 '희망의 작은 불빛'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먹어 보다, 안아 보다, 만져 보다, 만나 보다…. 모두 '보다'가 들어가잖아요. 본다는 건 '느끼다' '알다'라는 뜻이에요. 그중 하나가 '바라보다'라는 시각이고요. 귀로 들어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 마음으로 안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보다'의 의미를 재해석해 나가며 계속 사진을 찍을 겁니다."

최지연 기자 lim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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