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정국수습 대안없이… “대통령이 국회상륙 기습작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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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정국/강경한 야권]민주 “90초 사과와 다를게 없어”
박지원 “대통령 탈당해야 영수회담”
野, 주말 집회까지 끌려는 속내정치권 “촛불뒤 숨어 그림자 정치”
朴대통령, APEC회의 참석 않기로

대통령 앞에서 “물러나라” 피켓시위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기 위해 국회 본관에 들어서자 야당 의원들과 보좌진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 등이 적힌 피켓을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대통령 앞에서 “물러나라” 피켓시위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나기 위해 국회 본관에 들어서자 야당 의원들과 보좌진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 등이 적힌 피켓을 든 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여야 합의로 추천한 국무총리에게 실질적 내각 통할권 보장’을 약속하면서 ‘최순실 정국’을 풀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이날 전격적으로 국회를 방문해 야당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받아들인 것은 야당에 영수회담 수용을 압박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은 총리에게 어디까지 권한을 넘길지, 내치(內治)에서는 확실히 손을 떼겠다는 것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야당도 교통정리가 안 된 상태에서 박 대통령 탓만 할 뿐 어떻게 정국을 수습하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았다. 12일 ‘민중총궐기대회’의 민심에 따라 정국의 향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회담에서 새 총리의 권한에 대해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했다.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고 돼 있는 헌법 조항에 “실질적”이라는 말을 더해 총리의 권한을 강조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내치는 총리에게 전권을 주고 관여하지 않겠다”는 등 야당이 기대했던 발언은 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상황이 위급한데도 박 대통령이 헌법을 좁게 해석하면서 정치적 해법 마련에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표면적으론 “명확한 대통령의 2선 후퇴가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조건부 거부’를 내걸었다. 그러나 일방적인 공세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대응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정 의장 주재로 박 대통령이 제안한 국회의 총리 추천 문제를 논의했다. 그러나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박 대통령의 언급으로는 총리 권한이 어디까지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당장 수용할 수는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13분간 이뤄진 박 대통령과 정 의장의 회동을 두고 민주당은 “90초 사과, 9분 재사과의 재판” “내용이나 절차 모두 민심과 동떨어진 국회상륙 기습작전이었다”는 등 형식도 부적절했으며 내용도 부실했다고 혹평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국민의 요구는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이를 국민 앞에 진솔하게 공개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국회 추천 총리’라는 공을 넘기자 ‘국정 손 떼라’는 공을 다시 청와대로 넘기며 핑퐁게임을 한 것이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도 “대통령이 탈당한 뒤 영수회담을 열어 따질 것을 따지자”며 “김병준 총리 후보자 지명에 대한 명확한 철회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야권의 이 같은 주장은 ‘일면 협상, 일면 압박’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통한 시간 벌기로 보인다. 야당에 유리한 최순실 정국을 조기에 해소할 필요가 없는 만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민심을 확인한 뒤 당의 행보를 결정하겠다는 속내라는 얘기다. 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이 “우리는 촛불민심만 보고 간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야당으로선 만족스럽진 못해도 영수회담 및 총리 추천 자체를 계속 거부할 명분은 약해지고 있다. 청와대는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영수회담에서 논의하자”며 당장 9일에라도 만나자는 태도를 보였다. 박 대통령이 영수회담 등을 통해 차기 총리에 대한 명확한 권한 이양을 약속한다면 정국은 급속도로 ‘후임 총리 추천’ 국면으로 옮아갈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야당도 어느 선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성난 민심을 고려할 때 이 정도 수준으로 타협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결국 결자해지를 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가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오락가락하는 듯한 모습에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어제 말이 다르고 오늘 말이 달라서 국정 정상화에 대한 의지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며 “차라리 대통령 탄핵을 주장하든지, 아니면 총리 추천 제안을 받든지 결정해야 하는데 촛불 뒤에 숨어 그림자 정치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이달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대통령의 불참은 5차 북핵 실험 등 안보 상황이 엄중함을 감안해 9월에 이미 결정됐다”고 말했다. APEC 정상회의 불참과 ‘최순실 사태’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국무총리실은 “황교안 총리가 APEC 회의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장택동 will71@donga.com·길진균·조숭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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