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낙태-정관수술 한센인, 국가가 배상하라” 항소심도 인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3일 17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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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낙태·정관수술을 받은 한센인들에 대해 국가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항소심 판결이 다시 나왔다. 하지만 1인당 위자료 액수는 1심보다 줄어든 2000만 원으로 정했다.

서울고법 민사30부(부장판사 강영수)는 23일 엄모 씨 등 139명의 한센인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국가가 피해자들에게 2000만 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1심에서 정관수술 피해자와 낙태수술 피해자에게 각각 3000만 원과 4000만 원으로 정한 보상비용에 비해 감액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가 근거 법령 없이 위법하게 한센인들을 대상으로 낙태·정관수술을 시행했고 이로 인해 한센인의 인격권과 평등권, 행복추구권 등이 침해됐다"며 강제 낙태·정관 수술을 받은 한센인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국가가 한센병 치료를 위해 체계적인 대책을 세워 시행해왔고 한센병에 대한 사회 편견과 차별 해소를 위한 계몽정책을 실시한 점 등을 고려해 위자료 액수를 1심보다 감액했다.

재판부는 "이 판결로써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지만 어찌 보면 국가 책임만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사회 국민 대다수의 책임이기도 하다"며 "오늘 판결로 한센인들이 겪었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 공동체의 건강한 일원으로 거듭나는 데 작은 밑거름이나마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이날 판결에 대해 한센인들과 소송대리인단은 판결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위자료 감액에 대해선 아쉬움을 표시했다. 박영립 변호사는 "법원이 우리 사회 소수자이자 약자인 한센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배려를 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1심에서 인정된 위자료 액수도 충분하지 않았는데 2심에서 그렇게 장기간 심리하고 국가의 위법성을 명백히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1심보다 적은 액수를 인정해 지극히 아쉬운 판결"이라고 밝혔다.

한센인 500여명은 국가가 강제 낙태·정관수술을 강제로 시켰다며 2011년부터 5차례에 걸쳐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날 선고한 건을 제외하고 현재 1건이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고 나머지 3건이 서울고법에 계류 중이다. 그간 법원은 정관수술 피해자에게 3000만 원, 낙태수술 피해자에게 4000만 원의 배상판결을 내려왔다.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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