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실제 집필기간 1년도 안돼… 교사들 검토할 시간도 빠듯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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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에 짓눌리는 초등입학생]<下> 시간-예산 부족한 교과서 개정

교육부는 현재 지난해 확정된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라 새 교과서를 집필하고 있다. 내년부터 초등학교 1, 2학년을 시작으로 개정 교과서가 배포되며 초등 3, 4학년은 2018년에, 초등 5, 6학년은 2019학년에 개정 교과서를 받게 된다. 내년에 초등 1학년이 되는 45만여 명을 포함해 수백만 명의 학업 지침서 역할을 할 중요한 책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개정 교과서에서는 현재 지적되는 문제점이 대폭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시간과 예산이 빠듯하고 집필 역량도 부족하다”며 “새 교과서도 졸속으로 개정될 우려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교육과정 따라 수시로 바뀌는 교과서

교과서는 교육과정이 개정될 때마다 그에 맞춰 바뀐다. 교육부 관계자는 “과거에는 7, 8년 주기로 바뀌었지만 최근에는 교육과정이 시대 변화에 맞춰 수시개정 체제로 바뀌면서 교과서도 좀 더 자주 바뀌는 편”이라고 말했다. 통상 개정교육과정이 확정되면 이듬해 1, 2학년 교과서부터 개발을 진행해 그 다음 해에 새 교과서를 배포한다.

교육부는 개정 때마다 과목별 공모를 통해 교과서 집필진을 구성한다. 교육부는 “대학교수나 연구자, 교사 등이 팀을 꾸려 집필 공모를 하면 심사를 해서 선정한다”며 “집필진의 구성과 전문성, 예시로 작성해 제출하는 집필 단원 평가, 앞으로의 집필 계획서 등 3가지를 기준으로 집필팀을 뽑는다”고 밝혔다.

집필진은 먼저 새 교과서 초안 격인 ‘현장검토본’을 만들고 이를 10개 남짓한 ‘연구학교’ 또는 교사연구회에 뿌려 현장 반응을 취합한다. 여기서 나온 지적사항을 반영해 1차 수정본을 완성하고 추가 보완을 통해 감수본을 완성한다. 심의를 거쳐 확정되면 인쇄를 거쳐 신학기에 새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배부된다.

○ 일정은 촉박, 예산은 빠듯

문제는 이 같은 교과서 개발 일정이 양질의 교과서를 내놓기엔 매우 촉박하다는 것이다. 한 예로 현재 개발 중인 초등 1, 2학년 수학 교과서의 경우 집필진이 구성된 시점은 지난해 10월이다. 집필진은 4개월 뒤인 올해 2월에 현장검토본을 내놨고 7월에 현장검토본 검토가 마무리됐다. 8월 말 1차 수정본이 완성됐고 9월 말 국립국어원에 제출할 감수본을 완성해야 한다. 수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삽화 수정 등을 반영해 11월 말 완성본을 내놔야 인쇄와 배포에 차질을 빚지 않는다.

한 교과서 집필 관계자는 “수학 교과서를 개발한다고 치면 수학 교과서만 만드는 게 아니라 수학익힘책이나 그에 따른 교사용 지도서도 개발해야 해 실제론 3권의 책을 쓰는 셈”이라며 “이런저런 시간을 빼면 실제 집필기간은 1년도 안 된다”고 토로했다. 완성도 높은 양질의 콘텐츠를 기대하기엔 숨 막히는 일정이라는 말이다. 집필진이 매번 바뀌는 것은 교과서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장애로 작용한다.

현장검토가 짧은 시간 졸속으로 이뤄지는 것도 문제다. 현장검토본을 적용해 보는 학교가 워낙 소수인 데다, 학교 입장에서는 정규 교과서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현장검토본과 장단점을 비교해야 하다 보니 제대로 문제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실제로 현재 많은 문제가 지적되는 스토리텔링 수학도 현장검토 때는 별 문제가 지적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백만 명의 학생이 보는 책인데도 교과서 개정 예산이 권당 1억 원 정도로 낮게 책정된 것 역시 비판을 받는다. 한 교과서 집필 관계자는 “지금 예산으로는 인건비 대기도 빠듯한 수준”이라며 “그나마 이것도 현재 쓰는 교과서 개발 때보다는 3000만 원 늘어난 것”이라고 전했다.

○ 교과 이기주의에 교과서 분량 폭증

교육계에서는 집필진이 자신의 전공을 교과서에 꼭 집어넣으려고 하는, 이른바 ‘교과 이기주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2009 개정교육과정 때 교과서 분량을 줄이려 했지만 실패했다”며 “교과이기주의 때문에 교과서에 담기는 학업 분량이 계속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에는 교육과정 내용이 평균 20% 줄었고 암기, 주입식 내용도 모두 뺐다”며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덜고 기본에 충실한 창의적 교과서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 관계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2015 개정교육과정을 분석한 한 초등학교 부장교사는 “예컨대 10개였던 교육과정 성취기준이 8개로 줄어든 건 맞는데 문제는 내용이 전혀 줄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1번과 2번 성취기준 내용을 1번으로 합치고, 3번과 4번 기준을 2번으로 합치는 식의 개수 줄이기만 많았다”고 꼬집었다. 실제 배우는 내용은 그대로인데 교과서 양만 줄이려 하다 보니 오히려 축약과 생략이 많아 이해하기가 더 힘들어지는 졸속 교과서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이순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시간에 쫓겨 만든 현행 교과서는 아이들의 심리와 발달단계를 반영하지 못한, 어렵고 불친절한 교과서”라며 “학년 간, 과목 간 연계를 다각적으로 고려하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쉽고 즐겁게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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