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성동기]강대국 갈등의 불똥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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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기 국제부 차장
성동기 국제부 차장
2010년 9월 7일 동중국해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이 일본 순시선과 부딪쳤다. 중국 어선이 정선(停船) 명령을 어기고 달아나던 참이었다. 일본은 “고의성이 있다”며 중국인 선장을 구속했고, 중국은 “즉각 석방하라”며 반발했다.

중일 영유권 분쟁 수역에서 벌어진 이 사건으로 중국 13억 인구는 분노했다. 중국은 17일 만에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다. 외교적인 노력이 통하지 않자 중국이 가진 ‘힘’을 제대로 보여줬다. 일본이 꿈쩍도 하지 않자 경제 보복 카드를 꺼내들었다. 결정타는 첨단 제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희토류 수출 중단이었다. 당시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의 97%를 생산하고 있었다. 치명상을 입은 일본은 결국 선장을 석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중국해 문제는 우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남들의 문제’로 여겨졌다. 하지만 3년 뒤인 2013년 11월 중국이 센카쿠를 포함한 동중국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ADIZ)을 선포하면서 ‘우리의 문제’가 됐다. 해양과학기지가 있는 이어도가 중국 ADIZ에 포함된 것이었다. 허를 찔린 한국은 부랴부랴 이어도를 포함한 새로운 ADIZ를 선포했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6년 전 일을 지금 새삼 끄집어내는 것은 요즘 남중국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심상찮은 움직임 때문이다. 지난주 나온 네덜란드 헤이그 유엔해양법협약 7부속서 중재재판소의 남중국해 판정은 중국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제소국인 필리핀의 손을 들어준 이 판정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의 핵심 근거인 9단선(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U자형으로 그은 9개의 점선) 존재마저 부인했다. 중국인 입장에서는 그동안 ‘중국의 것’이라고 배워 온 남중국해의 바다와 섬이 중국 것이 아니라는 결정이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최대의 외교적 타격’(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핵심 이익으로 여겼던 남중국해 영유권에 흠집이 나자 중국의 대응은 거칠었다. 주변국들 보란 듯이 연일 무력시위를 벌였고 관영 매체들은 (이번 판결의 배후인) 미국과의 일전을 불사하자며 위기를 고조시켰다.

동중국해 갈등이 중일 간의 문제였다면 남중국해 갈등은 세계에서 가장 세다는 미국과 중국의 싸움이다. 미국이 오랫동안 누려 온 해상패권에 중국이 도전장을 내미는 형국이다. 세계 해상교역량의 40%를 차지하는 전략적 요충지인 남중국해를 놓고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재정적자로 국방비를 줄여야 하는 미국은 일본을 끌어들였고 중국은 이에 질세라 러시아를 우군으로 삼았다.

미국은 동맹국인 한국에도 동참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까지 나서 “중국이 국제규범을 준수해야 하며 이에 실패한다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이번 판정을 앞두고 미국 측이 한국에 확실한 입장 표명을 하라고 요구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중국이 국제법을 무시하는 모양새가 되면서 한국도 점점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리커창 중국 총리는 최근 몽골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서 남중국해 문제로 설전을 벌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기서 한중 정상회담을 갖지 않아 이 이슈를 피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남중국해 문제는 앞으로 두고두고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당장 26일엔 라오스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9월에는 중국 항저우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일찌감치 선택하든지, 끝까지 중립을 지키든지, 이도 저도 안 되면 계속 침묵하든지…. 선택지는 다양하다. 미중 사이에서 펼쳐질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성동기 국제부 차장 esprit@donga.com
#센카쿠 열도#중일 영유권 분쟁#남중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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