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살았능가 죽었능가’… 生存을 증명하는 절실한 넋두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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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배처럼 텅 비어/최승자 지음/124쪽·8000원·문학과지성사

‘나의 생존 증명서는 詩였고/詩 이전에 절대 고독이었다/고독이 없었더라면 나는 살 수 없었을 것이다’(‘나의 생존 증명서는’에서)

최승자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이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서른 살은 온다’고 노래했던 그 시인은, 그보다 30여 년의 시간을 더 지나왔다. 정신질환으로 투병하면서도 시를 놓지 않았던 시인의 절박함은 ‘나의 생존 증명서는 詩’라는 시구에 담겨 있다. 김소연 시인의 발문은 시인의 절실함의 깊이를 알려주는 설명이다. “병든 세계에서 병이 들어 하릴없이 살아 있는 자가, 살아 있는 것인지 아닌지 알기 쉽지 않은 자가 여전히 시를 써서 생존을 증명하고 있다. 살아 있기 때문에 가까스로 새로이 시를 쓴다.”

5년 만에 묶인 시집의 시편이 90편이 넘는다. 시인은 “한판 넋두리를 쏟아놓은 기분”이라고 ‘시인의 말’에 짧게 적었다. 그 넋두리들이 처절하다. ‘살았능가 살았능가/벽을 두드리는 소리/대답하라는 소리/살았능가 죽었능가/죽지도 않고 살아있지도 않고/벽을 두드리는 소리만/대답하라는 소리만/살았능가 살았능가’(‘살았능가 살았능가’에서) 벽에 둘러싸인 감방 같은 병든 세계에서 견디고자 하는 시인의 또 다른 노래는 이렇다. ‘내 존재의 빈 감방/푸른 하늘이 떠 있지 않나요/갇혀진 감방이 아니에요/바람으로 구름으로 통하는 감방이에요/그런데도 감방은 감방이로군요’(‘내 존재의 빈 감방’에서)

그러나 온 힘을 다해 시를 붙잡고자 하는 시인의 의지는 강렬하다. 시인은 눈과 귀와 모든 감각을 동원해 세계에 귀를 기울이고 시를 쓰고자 한다. ‘지나가는 소리를 잘 들으려면/고요해져야 한다/바람의 전언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가다 가다가’)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빈 배처럼 텅 비어#최승자#나의 생존 증명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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