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동영]문제 유출과 공교육 붕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2일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 문제가 유출됐다. 출제 교사→동료 교사→인터넷 강사→수강생으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경찰이 수사하고 있지만 그 많은 수능 과목 중 이번에 드러난 국어 딱 한 과목에서만 발생했고, 그것도 교사 둘과 인터넷 강사 한 명만 저질렀다고 보는 학부모나 학생은 아무도 없을 듯하다. 과거 모평이나 수능에선 이런 유출이 전혀 없었다고 믿는 곳은 교육당국 외에 누가 있을까 싶다.

모평이나 수능이 끝난 직후마다 유출 의혹과 인기 강사의 ‘적중’ 광고가 넘쳐났지만 이번처럼 연결고리가 드러난 적이 거의 없다. 시험 하루 이틀 전에 부랴부랴 비상연락망을 돌려가며 콕 집어 강조하는 강사가 있는 걸 보면 ‘뒷걸음질치다 쥐를 잡았다’는 해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히려 몸값 100억 원을 넘나드는 강사가 수두룩한 현실에서 이들의 인맥과 재력이 출제위원을 손아귀에 넣은 뒤 다시 수강생을 끌어들이는 구조는 아닌지 의심이 든다.

수능을 관리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고충도 크다. 자천타천을 받아 ‘5년 이상 교육 경력의 전문가’로 인력풀을 구성한 뒤 선정위원회를 거쳐 과목당 20∼40명 선으로 출제위원을 선발하지만 특히나 한 달 이상 격리되어야 하는 수능에는 참여하려는 전문가가 많지 않다고 한다. 그러니 갈수록 출제위원으로 들어가는 풀이 좁혀지고, 누가 자리를 비웠는지 파악하는 건 거대 기업처럼 움직이는 유명 강사에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다.

고등학교 교사 전체를 대상으로 삼아 무작위로 선정하면 인력풀이 좁아지는 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나도 알고 독자나 학부모가 아는 것처럼 수능 문제를 출제할 만한 교사가 그리 많겠나 하는 걱정이 든다. 평가원 관계자도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겠느냐”고 에둘러 말할 정도다.

이런 의견을 들은 학부모 몇몇은 “출제가 아니라 수능을 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폐해진 일반고교의 현실을 지적하는 말이다. 수능과는 거리가 먼 수준 이하의 내신 성적용 시험문제가 출제돼도 따질 엄두를 못 낸다. 학교에서 추천서나 생활기록부에 뭐라 적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문제를 들고 가면 “학원 문제는 가져오지 마라”라며 쳐다보지도 않는 교사가 한둘 아니다. 학생은 교사의 윽박 속에서 정말 학원 문제를 풀어주기 싫어서 그러는지 실력이 없어 소리친 건지 눈치로 가늠하지 않겠나. 교사도 해당 과목 수능을 치게 하고 (공개는 하지 않더라도) 학교장은 성적을 보고받아야 평가 사각지대에 있는 교사가 최소한의 자기 노력을 하지 않겠냐는 학부모의 울분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크다. 교사의 권위가 바닥으로 추락한다. 지금도 존경받기 힘든 터에 ‘학생보다 못 봤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선생님을 보고 인사하는 학생마저 사라질지 모른다. 교사가 수능을 본다고 가르치는 실력이 는다는 보장도 없다.

평가원은 조만간 ‘강력한’ 유출 방지 대책을 내놓을 게 분명하다. 인력풀을 지금보다 넓히고 보안을 강화한다 하겠지만 더 은밀해질 인기 강사의 ‘적중’ 홍보에 귀를 쫑긋 세우는 학부모가 더 많지 않을까.

학교와 교사가 믿음직하면 ‘내가 족집게다’는 식의 광고에 현혹될 이유도, 어떤 강사가 문제를 빼냈다는 소문에 관심 가질 일도 없다. 허나 전인교육도, 공부하는 학교도 만들지 못하면서 문제 유출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으니 교사부터 수능 보란 소리가 나오지 싶다. 교육의 주체는 교사 학생 학부모라던데 맞는 말인가.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문제유출#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평가#학교#교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