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M&A 저주, 오너의 장기적 안목으로 넘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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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성공적 한국형 M&A 주요과제

섣불리 인수합병(M&A)을 시도했다 ‘승자의 저주’에 빠진 기업이 많다. 일순간에 기업 규모를 키울 수 있다는 M&A의 달콤한 유혹 뒤에는 거대 기업마저도 한순간에 몰락의 길로 내모는 치명적인 독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M&A의 역사가 오래된 서구 기업과 달리 국내 기업들은 M&A의 필요성을 인지하면서도 정작 이에 관한 제반 지식이 깊지 않아 일을 그르칠 때가 많다. 이 때문에 국내 문화 및 여건을 고려한 전략과 실행 및 계획이 필요하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는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와 함께 183호(8월 2호)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성공적인 한국형 M&A를 위한 과제를 제안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 오너가 주도하라

M&A 입찰을 두고 경쟁하는 두 기업이 있다. A기업은 최고경영자(CEO)와 임직원들이 투자은행(IB) 관계자 및 자문단과 함께 피인수기업의 가치를 산정하고 입찰가격의 상한선을 정한다. B기업에는 여기에 한 가지가 더 있다. “무조건 사라”라는 오너의 지시다. 이렇게 되면 입찰 가격의 상한선은 크게 높아진다. 둘 중 어떤 기업이 승리할지는 묻지 않아도 뻔하다. “이런 일이 실제로 가능하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 일어난 많은 M&A에서 자주 생겼던 일이다.

오너가 나서서 높은 가격이라도 밀어붙여 무조건 기업을 사라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무조건 사는’ 식의 M&A가 과도하게 높은 입찰가격으로 이어져 ‘승자의 저주’에 빠질 위험도 있다. 하지만 괜찮은 매물이 나오면 수많은 대기업과 PE들이 몰려드는 한국 M&A 시장에서 오너가 강력하게 밀어붙이지 않으면 애초부터 실패할 확률이 높다. 오너 본인이 이 거래를 밀어붙여야겠다는 확신이 없거나 실무진이 오너로부터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면 애초부터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는 게 낫다. 전문경영인이 불확실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인수 작업을 주도한다는 것은 한국 경영 현실에서 아직까지 쉽지 않기 때문이다.

○ 길게 보라

미국과 유럽 등 서구 기업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기업의 가장 큰 차이는 주주 중심 경영 여부다. 주주 중심 경영을 하는 서구 기업은 단기 성과와 배당을 중시하는 반면 오너 체제인 아시아 기업은 장기적 성과 및 외형 확대에 많은 비중을 둔다.

장기적 관점에서 M&A를 추진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두산인프라코어의 밥캣 인수를 들 수 있다. 두산은 2007년 무려 49억 달러(약 5조7330억 원)라는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 밥캣을 인수했다. 그간 한국 기업이 미국 기업을 인수한 적이 거의 없었고 두산이 인수자금의 대부분을 차입매수(LBO)로 조달했기에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아니나 다를까. 인수 1년 만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적자 규모가 커졌다. 잘못된 M&A가 아니냐는 그룹 안팎의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이후 미국 경기가 조금씩 풀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밥캣은 2010년 3분기부터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이후 실적도 순항하고 있다. 현재 밥캣 매출은 두산인프라코어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런 장기적 성과를 향유하려면 “우리 회사가 C기업을 인수한 후에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과연 이를 감내할 수 있느냐”에 대한 철저한 사전 분석이 필요하다. 특히 외부 충격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산업에서는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이에 대한 대비를 마친 후 인수전에 뛰어들어야 한다.

○ 계획적인 딜을 하라

맥킨지가 1999년부터 2012년까지 이뤄진 세계 M&A 1000건(은행업종 제외)을 분석한 결과, M&A 유형을 크게 계획적, 전술적, 선택적, 대형 등으로 나눌 수 있었다. 계획적 M&A는 중형 M&A를 빈번하게 하며 M&A 후 시가총액이 상당 수준(10∼25%)으로 증가하는 거래를 말한다. 전술적 M&A는 많은 M&A를 하지만 대부분 소형 거래여서 M&A 후 시가총액이 그다지 많이 증가하지 않는(5∼15%) 거래를 뜻한다. 선택적 M&A는 아주 드물게 M&A가 일어나는 경우를 말하며, 대형 M&A는 단 1건의 거래로 시가총액 30% 이상의 변화가 일어나 기업의 체질 자체가 달라지는 거래를 의미한다.

어떤 유형의 M&A가 주주가치를 가장 높일 수 있을까. 전문 기관들의 분석 결과, 계획적 M&A를 한 기업들의 기업가치가 가장 크게 상승했다. 하지만 업종별로는 차이가 났다. 통신이나 소재, 소비재 등의 산업에서 계획적 M&A를 한 기업들의 주주가치 상승 폭이 다른 업종에 비해 컸다.

이 결과는 국내 기업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 즉, 해당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인수할 만한 매력적인 기업이 많은 업종이라면 M&A를 통해 시가총액과 기업의 덩치를 불리고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투자를 단행해 해당 업종을 장악하는 계획적 M&A 전략이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물론 계획적 M&A가 좋다고 해서 우리 기업이 속한 업종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무작정 이를 좇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 믿고 맡길 세 명을 확보하라

김흥국 하림 회장은 성공적인 M&A의 전제 조건으로 ‘비쩍 마른 소’ 이론을 주창한다. 골격과 기본은 튼튼한데 잘 먹지 못해 마른 소는 잘 먹이고 운동을 시키면 3∼4개월만 돌봐줘도 금방 큰 소로 변하지만 앳된 송아지를 큰 소로 키우려면 최소 3년 이상이 족히 걸린다는 것이다. 일종의 ‘저평가 우량 기업’을 판별하는 그만의 기준이 바로 ‘골격은 좋지만 마른 소’라는 뜻이다. 김 회장의 말을 뒤집어보면 비쩍 마른 소를 잘 고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먹이고 돌보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비쩍 마른 피인수기업을 우량 기업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까. 믿고 맡길 사람 세 명만 확보하면 끝이다. 해당 기업이 나아갈 방향성을 설계하고 투자를 주도할 CEO, 빈틈없이 재무 문제를 관장할 최고재무책임자(CFO), 사람 관리를 도맡을 최고인사책임자(CHRO)가 그 세 명이다.

이 밖에 시너지 효과에 지나치게 기대하지 말 것, 신사업 진출을 위한 해외 기업 인수는 신중할 것, 남들 따라서 무작정 M&A 하지 말 것 등도 한국 기업이 유념해야 할 지침이다. 유원식 맥킨지 파트너

정리=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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