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선미]나를 만나는 소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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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오랜 지인 두 명의 생활방식이 언젠가부터 확 달라졌다. 가만 보니 소비의 문제였다.

당신은 얼마나 생각하면서 소비하는가. 소비하는 행위와 그 의미에 대해 느리고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평범하지는 않지만 생각해 볼 만한 두 지인의 소비를 소개한다.

#1. 소비는 나의 민낯과 만나는 일

두 아이의 어머니인 박모 씨(40)는 일단 물건을 잘 안 산다.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며, 기념일이라고 가족끼리 특별한 선물도 안 한다. “뭔가 필요하고 사고 싶으면 딱 그날 사면 되지, 왜 무슨 날이라고 억지로 뭘 사야 하나요.”

그래서 초등학생 딸에게 올여름 생일에 하고 싶은 일을 적어 보라고 했더니 이렇게 계획표를 내밀었다고 한다. ‘먹을 것: 맛있는 여름 과일, 생야채, 치킨 윙/ 할 것: 낮잠 자기, 친구 한 명이나 두 명 불러서 놀기, 동네 책방 가서 책 읽기.’

박 씨는 물건을 사서 효용이 다하면 미련 없이 버린다. 다 읽은 책도 버린다. “이 책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란 스스로의 명령만이 책을 더 탐독하게 해 주거든요.”

그의 말을 들어보았다.

“물건은 그저 물건일 뿐. 아이를 사랑하면 따뜻하게 안아주면 된다. 굳이 물건이란 징검다리를 건너 사랑을 표현할 필요가 없다. 나는 선물을 사지 않기에 아이와 오래 얘기를 나누고, 집에 굴러다니는 종이를 갖고 놀기 위해 함께 머리를 짜낸다.”

“나는 자린고비는 아니다. 몸이 피곤해 가족에게 짜증을 낼 것 같으면 외식을 한다.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진짜 삶을 대할 시간을 벌어주는 교통비와 수수료도 아깝지 않다. 집에서 치즈를 만드느라 긴 시간 솥 옆에 붙어 서서는 ‘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사 먹는가. 그 아낀 시간은 다 어디로 갔나’란 의문도 가져본다. 나는 지갑을 열 때마다 스스로 정직하게 묻고 답한다. 나라는 존재의 민낯을 만나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가 즐겁다.”

#2. 적게 벌어 적게 쓴다.

김모 씨(44)는 요즘 주 4일 하루 5∼7시간 서울 근교의 푸드카에서 햄버거를 만들어 판다. 13년 다니던 회사를 2년 전 관두고 요리를 배웠다. “내 삶의 주도권을 갖고 살고 싶었고, 밥벌이를 하려면 기술이 필요했고, 그래서 적성이 있을지도 모를 요리를 택했습니다.”

음식점을 차리기엔 초기 자금이 많이 들고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커서 푸드카를 차렸다. 적은 돈을 벌지만 적게 쓰고, 나머지 시간을 창의적 활동과 배움에 쓰기로 한 것이다. 그의 푸드카를 찾아갔을 때, 가수 이적의 노래가 흘러나오는 실내 한편에는 그가 타고 다니는 접이식 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손님이 없을 땐 글을 쓰거나 요리를 연구한다고 했다.

“남자 나이 40대는 무한경쟁 속에 스트레스가 많잖아요. 전 미혼이라 이런 삶을 택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꿈이란 게 현재에 대한 불만족에서 나온다고 보면 저의 목표는 더이상 꿈꾸지 않는 삶이에요. 현재의 제 삶에 만족하고, 일도 경험을 쌓으며 조금 더 잘하고, 돈에 대한 걱정에서 벗어나고, 타인의 시선에 대한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나답게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남과 비교하는 과시적 소비에서 벗어나 나만의 콘텐츠를 삶 속에서 만든다. 낡은 것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나누기도 한다. 사실 이런 삶은 버겁고 두렵다. 그런데 어쩌나. 우리 모두는 오래오래 행복할 소비 방식을 찾는 과제에 봉착했다. 성장 감퇴 경제에서 은퇴 후에도 긴 여정을 살려면 진지하게 나를 만나야 하지 않겠나.

김선미 소비자경제부 차장 kimsunmi@donga.com
#소비#민낯#나답게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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