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명원 찾은 학생들…“스스로 생각하는 힘 기를 수 있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5일 19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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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6시 반 서울 종로구 복촌로의 한 한옥. 지난달 4일 문을 연 건명원(建明苑·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 수업이 열리는 곳이다.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회장 후원으로 설립된 건명원은 원장 최진석 서강대 교수(철학)를 비롯해 배철현 서울대 교수(종교학),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 등 8명이 인문학, 철학, 과학, 예술을 융·복합적으로 가르친다. 올해 초 1기 수강생 30명 모집에 지원자격 제한(만 19~29세)에도 불구하고 900여명이 몰려 화제가 됐다. 연말까지 매주 한번씩 수업이 진행되며 전 과정이 무료다. 기자는 이날 ‘건명원 일일학생’ 신분으로 수업을 체험했다.

○교수 말 자르고 질문… 강의 콘텐츠보다 강의 방향성이 중요


강의실에는 양복 차림에 ‘도덕경’을 든 남성과 스타벅스 커피, 맥 북을 책상에 둔 스키니진 차림의 젊은 여성 등 다양한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이날 수업의 전체 주제는 ‘사유와 정신’. 1교시 강사인 최진석 교수가 컵을 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걸 컵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대부분은 ‘컵’이라고 판단하고 시선을 거둡니다. 반면 시선을 끝까지 붙이는 사람은 전혀 다른 것을 봐요. 함민복 시인의 시를 보면 섬을 ‘물 울타리를 둘렀다’고 표현하죠. 남들이 그냥 섬이라고 판단할 때 그는 집요한 관찰과 사색으로 ‘물 울타리’라는 새로움을 창조한 겁니다.”

그는 탈레스, 공자, 노자 등 동서양 철학을 넘나들며 독립적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강의가 1시간을 넘어가자 최 교수의 말을 불쑥 자르고 질문하는 학생들이 많아졌다. 오후 8시부터는 아예 책상을 마주보게 배치한 후 토론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독립적으로 터득하면 객관적인 것과 거리가 멀 텐데 어떻게 검증하나요.” “건명원도 기존 것에 대한 교육이 아닌가요. 우리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죠” 등과 같은 공격적 질문이 이어졌다.
2교시가 시작된 오후 8시 반.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등장해 피아노 연주 동영상을 보여준다.

“아름답죠? 그런데 갑자기 전염병이 돌아서 전 인류가 모두 죽는다면? 피아노 선율은 공기의 압축된 파장에 불과합니다. 파장에 의미를 부여해줄 호모사피엔스가 없다면 음악도 없죠. 뇌 역시 고기 덩어리인데 어떻게 ‘의미’를 만들 수 있을까요?”

그는 골상학, 뇌신경, 뇌구조를 통해 인간의 정신을 이야기했다. 수업은 밤 10시 반까지 이어졌다.

○30대 1 뚫은 ‘고(高) 스펙’ 학생들 “스스로 생각케 하는 교육 원해”

쉬는 시간 학생들과 대화를 나눴다. 절반가량은 대학생. 나머지는 대기업 회사원, 군인, PD 등 다양했다. 건명원은 “스펙은 보지 않았다”고 했지만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생, 서울대졸업생 등 전반적으로 ‘고 스펙’ 보유자가 많았다. 건명원 ‘입학’ 목적은 다 달랐다.

대기업에 다니는 최정윤 씨(29·여)는 “개인 사업을 위한 통찰력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 아프리카 도시개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사업가 강신우 씨(29)는 “도시에서 어떻게 인간다운 삶을 배양할 수 있을지 근원적 아이디어를 얻고 싶다”고 밝혔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오승목 씨(28)는 “동료가 사회 불공평을 ‘가속도 법칙’인 F(힘)=m(질량)a(가속도)로 설명하는 것을 보고 자극이 됐다”고 했다.

창의적 인재를 키우겠다는 건명원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 아직 결론을 내긴 이르지만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남들이 이미 만든 것을 주입받는 식이 아니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최 교수는 “건명원의 강의는 사유 능력을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 강한데 방법을 몰라 답답한 젊은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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