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6년만에 제자리 찾은 거래소… 이제부터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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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경제부 기자
정임수 경제부 기자
한국거래소(KRX)가 공공기관에 지정됐다가 해제되기까지의 과정은 한 편의 코미디 같다. 거래소는 2005년 1월 증권거래소와 코스닥증권시장, 선물거래소 등을 통합하면서 출범했다. ‘단일 거래소를 만들어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취지에서 정부 주도 아래 거대 독점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4년 후 정부는 이런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했다. 당시 정부는 ‘거래소가 독점적 사업구조를 갖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알 사람은 다 안다. 공공기관 지정 이면에는 2008년 3월 취임한 이정환 전 거래소 이사장에 대한 ‘괘씸죄’가 작용했다는 것을.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인사를 이사장으로 낙점했다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이사장 추천위원회는 이정환 당시 거래소 경영지원본부장을 새 이사장으로 추천했고, 이 이사장은 주총을 통해 선임됐다. 그러자 검찰이 거래소 비리를 캔다며 수사에 나섰고 감사원의 감사도 이어졌다. 이래도 별 소득이 없자 정부는 2009년 1월 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압박했다.

증권사·선물회사 등 35개 민간기업이 90%가량의 지분을 갖고 있고 정부 지분은 전혀 없는 거래소가 공공기관이 된 과정은 이랬다. 이 전 이사장은 2009년 9월 임기를 절반가량 남기고 중도하차하면서 “정부가 개인을 쫓아내기 위해 제도와 원칙을 바꿨다”고 비판했다. 이 전 이사장은 스스로를 ‘투사’로 생각했겠지만 거래소 내부에서는 “자리를 지키려다 조직을 망쳤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2013년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대체거래소 설립이 허용되면서 ‘법적으로’ 거래소의 독점적 지위는 사라졌지만 정부는 ‘방만경영’을 이유로 여전히 발목을 잡았다. 거래소는 지난해 1인당 1306만 원이던 복리후생비를 410만 원으로 70% 가까이 삭감했다.

이처럼 6년이라는 긴 과정을 거쳐 거래소는 비로소 공공기관 지정 해제의 문턱을 넘었다. 하지만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던 당시의 문제가 사라졌을까. 법적으로 거래소 독점 문제는 해소됐지만 현실적으로 대체거래소가 등장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정부가 낙점한 인사를 줄줄이 금융기관으로 내려 보내는 ‘낙하산 인사’와 ‘괘씸죄 벌주기’는 얼마 전 KB금융사태를 통해 재연됐다. 이런 구태가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 금융산업의 선진화는 요원하다. 거래소도 방만경영을 없애는 노력을 지속해 논란의 여지를 제공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임수 경제부 기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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