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가계빚 급증은 대불황 전주곡”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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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으로 지은 집/아티프 미안, 아미르 수피 지음/박기영 옮김/320쪽·1만5000원·열린책들
차세대 이끌 美 소장경제학자 2명, 경기침체 역사적 사례로 위험 경고

“금융의 특성 때문에 ‘비 올 때 우산 뺏는다’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소 섭섭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우리나라 금융을 총괄하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올해 신년사다. 한마디로 은행의 안전성을 위해 경기 불황 시 서민이나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는 ‘우산 걷어 들이기’ 식 금융관행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신 위원장의 신년사 어디에도 ‘가계부채’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가 없다.

불과 지난해까지 1000조 원에 육박한 가계부채를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부산을 떨었던 게 언제냐 싶다. 이 책의 두 저자는 신 위원장의 신년사를 들었다면 당장 우려를 쏟아냈을 것이다. 이들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가계부채에 의존한 성장은 매우 위험하다. 한국 경제가 당면한 위험은 우리가 해외의 여러 역사적 사례에서 살펴본 경우와 유사하다”고 경고한다.

두 저자는 ‘21세기 자본론’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와 더불어 국제통화기금(IMF)이 선정한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45세 이하 경제학자 25인’에 선정됐다.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전 미국 재무장관)는 이 책을 “2008년 금융위기와 뒤이은 대침체에 관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의 주장은 간명하다. 역사적으로 심각한 경기침체의 근원에는 늘 가계부채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과 2008년 경기침체 직전 가계부채가 급증했다. 또 두 사건 모두 가계지출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급감하면서 시작됐다”고 적고 있다.

가계부채가 특히 위험한 건 자산가격 급락 시 채무자에게 일방적 손실을 안겨주는 금융제도 속성상 저소득층의 급격한 소비 위축을 부르기 때문이다. 소비 위축은 결국 기업 이윤 악화와 투자 감소, 상환 불능으로 이어져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거시경제 전체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된다.

이와 관련해 채무자에게 가혹하리만치 상환을 몰아붙이는 금융시스템이 경기 침체를 더 악화시켰다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스페인 정부의 경우 채무자에 대한 빚 탕감 등 채무 조정이 은행의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저자는 은행이 흔들리는 것보다 채무자들의 소득 감소에 따른 악영향이 경제에 훨씬 큰 부담을 안긴다고 지적한다.

심각한 가계부채는 빈부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견해도 눈여겨볼 만하다. 경기 침체로 자산 가격이 떨어지면 돈을 빌려 집을 산 서민층의 순자산은 감소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빚을 갚지 못해 집을 압류당하는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은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다. 저자는 경기 침체 이후 서민층의 자산 손실이 금융기관의 주식이나 채권을 보유한 고소득층의 수익으로 이전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거시경제에 독소로 작용하는 가계부채의 해법은 무엇인가. 저자들은 집값이 떨어졌을 때 자산 손실을 채권자와 은행이 함께 나누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책임 분담 모기지(shared responsibility mortgage)’다. 채무자 일방이 손실을 보도록 설계된 현 대출시스템의 경직성을 탈피해 집값이 떨어진 만큼 금리를 낮춰주자는 것이다. 단, 집값이 오를 때에는 금융기관에 일정 수준의 추가 수익을 보장해준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럴싸한 해법 중 하나이긴 한데 금융기관에 자산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나눠 지도록 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빚으로 지은 집#금융#가계빚#대불황#경기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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