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詩 강의前 춤사위부터 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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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하기 쉬운 강연에 예술장르 결합… 신정근교수, 인문학 대중화 실험 나서

올해 4월 선비정신과 풍류문화연구소의 정기공연 ‘탈·춤 모리’에서 무용수들이 어깨춤을 추고 있다. 공연 직후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의 인문학 강연이 이어졌다. 선비정신과 풍류문화연구소 제공
올해 4월 선비정신과 풍류문화연구소의 정기공연 ‘탈·춤 모리’에서 무용수들이 어깨춤을 추고 있다. 공연 직후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의 인문학 강연이 이어졌다. 선비정신과 풍류문화연구소 제공
여기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인문학자가 한 명 있다. 그의 강연에 앞서 오색의 화려한 한복을 차려입은 여성이 서슬 퍼런 칼춤을 춘다. 이어 여성은 탈을 뒤집어쓴 채 덩실덩실 어깨춤을 보여준다. 흥겨운 한판 공연이 끝나면 그는 각 춤사위와 비교하며 최치원의 시 ‘향악잡영오수(鄕樂雜詠五首)’의 의미를 구구절절 풀어준다.

신정근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교수(50)가 이끄는 ‘선비정신과 풍류문화연구소’의 최근 인문학 강연 장면이다.

17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선비정신과 풍류문화연구소에서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모여 토론을 하고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7일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선비정신과 풍류문화연구소에서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와 대학원생들이 모여 토론을 하고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연구소 이름이 풍기는 ‘아우라’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서울 명륜동 전통시장 뒤편의 산동네에 있는 이 연구소는 소박한 가정집을 연상시킨다. 이곳에서 인문학 대중화를 내걸고 예술과 융합이라는 새로운 실험에 나섰다. 딱딱하기 쉬운 인문학 강연에 공연과 서화와 같은 예술장르를 결합시킨 것. 신 교수는 이런 강연을 일반인과 학생 상대로 연간 네 번 개최한다. 인문학 콘텐츠가 선비정신이라면 전통예술은 풍류문화인 셈이다.

그는 이 시대에 선비정신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최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지적했듯이 우리 사회가 공공성이나 공동의 가치추구에 너무 무관심하다. 전통시대 선비는 이익에 대해 스스로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드물게 조선왕조가 500년이나 이어진 것은 이런 지도층의 자정능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2011년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을 펴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은 동양고전을 다룬 인문학 책으로는 드물게 지금까지 40만 권 넘게 팔렸다. 그는 “전통 개념에서 풍류는 놀이를 포함하면서 예술도 아우른다”며 “대중과 괴리된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포인트로 풍류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그는 인문학의 위기를 이렇게 진단했다. “학문 집단의 폐쇄성 때문에 전공자들끼리도 무슨 말을 하는지 서로 못 알아듣는 지경입니다. 또 정부 지원만 기댄 채 자생력을 갖추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연이 많아졌지만 깊이가 떨어지고 1회적이라는 한계가 있고요.”

최근 이 연구소는 한국연구재단의 ‘인문도시 지원사업’에 선정돼 궁궐과 박물관, 문화거리를 주제로 한 인문학 대중 강연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방법에 대해 “교육기관에서 쉽게 인문학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향악잡영오수#인문학#선비정신#풍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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