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세계사를 뒤흔든 권력투쟁 뒷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쿠데타의 기술/쿠르치오 말라파르테 지음·이성근, 정기인 옮김/400쪽·2만 원·이책
해박한 지식과 살아있는 경험 생생

1922년 10월 28일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가 이끄는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의 무장조직 검은셔츠단 4만 명이 수도 로마로 진군하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들이 로마에 입성한 29일 비토리오 국왕은 당시 의석수 36석에 불과한 파시스트당의 당수 무솔리니(앞줄 가운데)를 총리에 임명함으로써 사실상 쿠데타를 승인한다. 말라파르테는 당시 무솔리니를 지지했으나 외면받았다. 이책 제공
1922년 10월 28일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가 이끄는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의 무장조직 검은셔츠단 4만 명이 수도 로마로 진군하는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들이 로마에 입성한 29일 비토리오 국왕은 당시 의석수 36석에 불과한 파시스트당의 당수 무솔리니(앞줄 가운데)를 총리에 임명함으로써 사실상 쿠데타를 승인한다. 말라파르테는 당시 무솔리니를 지지했으나 외면받았다. 이책 제공
쿠데타는 정치가 아니라 기술이다.

트로츠키가 없었다면 러시아혁명은 성공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레닌은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은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어느 순간에 어느 방식으로 권력을 탈취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레닌이 혁명의 시기를 저울질하며 망설이는 동안 ‘쿠데타의 기술자’ 트로츠키는 핵심 시설을 장악하기 위해 소수의 무리를 이끌고 주도면밀하게 움직였다. 그것이 너무 신속하고 정확해서 볼셰비키는 한동안 권력이 자기 수중에 들어온지도 몰랐다. 레닌마저도 24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깨달았다고 한다.

이 책은 국가 전복의 기술, 즉 쿠데타의 기술에 관한 책이다. 공산주의 이념이 어쩌니 저쩌니 하는 것은 이 책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혁명이든 뭐든 본질은 쿠데타다.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군주론’의 마키아벨리가 다시 살아나 러시아혁명을 분석한다는 느낌이 든다.

쿠데타(coup d'´etat)란 말의 원조는 프랑스다. 나폴레옹의 브뤼메르 18일이 최초의 근대적 쿠데타로 불린다. 나폴레옹 이래 쿠데타는 왕조 시대의 권력 찬탈과 달리 법의 준수와 법의 파기 사이에서 갈등한다. 프랑스혁명의 아들이기도 했던 나폴레옹도 공화국 법과 의회 절차를 준수하면서 권력을 차지하겠다는 환상에 빠졌다. 나폴레옹이 최종적 순간에 군대를 동원해 무력으로 의회를 습격하긴 했지만 그 환상 때문에 애초의 권력 장악이라는 목표를 몇 차례나 물거품으로 만들 뻔했다. 나폴레옹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내란음모는 일종의 쿠데타 음모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유죄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것이지만 KT 혜화지사나 평택 물류기지 등을 특정해 공격 목표로 삼은 것은 쿠데타의 기술적 측면에 해당한다. 오늘날은 지하철에 앉아 ‘쿠데타의 기술’이라는 제목을 버젓이 가진 이 책을 읽어도 약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뿐 아무도 잡아가지는 않지만 이 책이 1930년대 처음 나왔을 당시엔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혀 금서 중의 금서가 됐다. 오늘날에도 트로츠키를 숭배하는 유럽의 극좌파는 자본주의 국가 전복을 꿈꾼다.

저자 쿠르치오 말라파르테(1898∼1957)는 마키아벨리의 먼 후예쯤 되는 이탈리아인이다. 그는 이 책으로 체포돼 3년간 섬 유배생활을 했다. 이탈리아 작가가 정치적 음모에 연루된 게 아니라 순전히 작품 때문에 처벌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저자 자신이 실제 음모가적 기질이 있어 이 책은 더 실감난다. 그는 일찍이 파시즘 운동을 추종했으나 무솔리니 정권으로부터 버림받았고 공산주의 운동에 경도됐지만 죽기 직전까지 공산당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책은 말라파르테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현대적 고전이다.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에서 볼프강 카프 등 보수파의 쿠데타 시도와 바우어 내각의 대응도 흥미로운 분석이다. 스페인 프랑코, 이탈리아 무솔리니, 독일 히틀러의 파시스트 쿠데타를 분석했다. 해박한 지식과 살아있는 경험이 결합돼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쿠데타의 기술#군주론#러시아혁명#내란음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