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르트 다줌마 왔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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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과 건강의 아이콘’인 야쿠르트 아줌마 세계에 다문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강원 영월군의 티밀시나 안니타 씨(왼쪽)와 인천 부평구의 요시모토 요코 씨가 자신이 맡은 지역에서 제품을 배달하는 모습. 한국야쿠르트 제공
‘성실과 건강의 아이콘’인 야쿠르트 아줌마 세계에 다문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강원 영월군의 티밀시나 안니타 씨(왼쪽)와 인천 부평구의 요시모토 요코 씨가 자신이 맡은 지역에서 제품을 배달하는 모습. 한국야쿠르트 제공
강원 영월군에 사는 네팔인 티밀시나 안니타 씨(26·여)는 매일 아침 집을 나서 마을 곳곳을 누비는 ‘야쿠르트 아줌마’다. 2010년 한국으로 시집온 그는 야쿠르트 아줌마가 된 지 10개월 밖에 안 되지만 고정 고객이 100명을 넘는다. 일하면서 한국어 실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안니타 씨는 “사람들이 신제품 설명도 잘 들어주고 실수를 해도 너그러운 태도로 대해준다”고 말했다.

○ ‘다문화 야쿠르트 아줌마’ 등장

한국사회가 본격적으로 다문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성실과 건강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야쿠르트 아줌마 세계에 다문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4일 한국야쿠르트에 따르면 전국 야쿠르트 아줌마 1만3000여 명 가운데 31명이 일본과 중국, 네팔 출신이다. 중국 24명, 일본 6명, 네팔 출신이 1명이다. 이들은 지난해와 올해 야쿠르트 아줌마로 채용됐다. 한국야쿠르트 관계자는 “영업장에 야쿠르트 아줌마가 되겠다며 문의해 오는 다문화 여성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도쿠시마(德島) 현 출신으로 인천 부평구에서 활동하는 요시모토 요코 씨(49·여)는 “일본에 계신 모친이 하루에 야쿠르트 2병을 드셨다”며 “어렸을 때부터 야쿠르트와 친숙해 사람들에게 제품을 잘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텔레비전 드라마와 책으로 독학한 한국어 실력도 유창한 수준이다.

강원 평창군에 사는 하사타니 유키 씨(45·여)는 늘 밝은 음성으로 ‘여보세요, 야쿠르트입니다’라며 전화를 받는다. 대학에서 영어학을 전공하고 일본 통신회사에서 근무했던 하사타니 씨는 1999년 결혼과 함께 한국 생활을 시작했고 군청에서 일본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내년에는 한국 국적으로 귀화할 예정인데 진짜 한국 야쿠르트 아줌마가 되는 것 같아 기쁘다”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릴 때 일본 선수들을 포함해 외국 선수들에게 좋은 야쿠르트 제품을 배달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을 바라보는 영업소와 시민들의 반응도 좋다. 김영박 부평 백운영업점장(30)은 “중국 동포나 일본인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말이 조금 서툴러도 꾸준하고 성실하게 일한다”며 “한국어 실력과 업무 능력도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고 전했다.

○ 다른 서비스 분야는 소극적

유통업계에선 다문화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있는 것은 환영할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직 소수에 불과하지만 고객과 만나는 최전선에 배치된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백화점과 대형마트는 여전히 다문화 여성 채용에 소극적이다. 언어 장벽이 크고 고객들이 이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주된 이유다. 채용과 선발을 위한 과정도 따로 없고 다문화 여성 근무자의 현황조차 잘 파악이 안 될 정도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고객에게 세심하게 설명해야 하는 업종 특성상 언어 장벽이 있는 다문화 여성을 채용하기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일부지만 신분이 불확실한 사례도 있고 문화적인 차이도 쉽게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문화 여성들의 생각은 다르다. 한국에 온 지 수년이 지나도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주방 보조’ 외에는 없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서울 광진구에서 분식집 점원으로 일하는 중국인 이모 씨(43·여)는 “일만 있으면 한국어도 더 빨리 늘고 업무에도 잘 적응할 수 있는데 주변 다문화 여성 가운데 제대로 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한국에 사는 다문화 여성이 종사하는 직업의 질은 계속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여성 결혼이민자 가운데 단순노무직 비율은 2009년 21.6%에서 지난해 29.9%로 늘었다. 일반 여성은 16.3% 수준이다.

전기택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다문화 여성들은 고학력자라도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찾지 못해 일용직에 단기 채용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며 “실용 한국어 교육을 늘려 이들의 정착을 도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장관석·박선희 기자 jks@donga.com
#야쿠르트 아줌마#다문화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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