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고성호]국정마비 반성없이… 與지도부 낯뜨거운 자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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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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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호 정치부 기자
고성호 정치부 기자
여야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 타결 다음 날인 18일 오전 9시 국회 본관 2층 새누리당 대표실. 모처럼 최고위원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난데없이 ‘칭찬 릴레이’가 펼쳐졌다.

먼저 황우여 대표가 입을 열었다. “인내와 존경이 협상의 출발점임을 잘 보여주신 이한구 원내대표와 김기현 수석(원내수석부대표)에게 수고하셨다고 말씀을 드린다.”

그는 이어 “뒤늦은 감은 없지 않으나 18대 국회 평균 법률제정 기간인 253.5일에 비하면 너무 늦다고 탓할 것만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46일 만에, 새 정부가 출범한 지 20일 만에 정부조직법 관련 38개 법안 협상이 타결됐다는 언론의 질타를 의식한 듯하다. 그간 국회 입법처리 관례에 비춰 보면 큰 잘못은 아니라는 얘기다.

황 대표의 이런 견강부회(牽强附會) 논리에 따르면 여야는 정부조직법을 ‘졸속 처리’한 셈이 된다. “정부조직법의 진정성을 여당 지도부에 제안하시고, 여당의 교섭 과정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신 박근혜 대통령께도 감사드린다”는 황 대표의 말은 ‘황당 발언’의 화룡점정이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이 원내대표는 그나마 “국민께 걱정 드렸던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민주통합당을 겨냥해 “발목 잡기가 노골적으로 이뤄지고 있던 일이 없어지면 좋겠다. 야당의 숙원사업을 해결한다든지, 삼라만상을 한꺼번에 다 처리하자는 식으로 국회가 운영되면 새 정치를 못 하는 집단으로 계속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원총회에선 “누더기를 잔뜩 갖춘 모습의 미래창조과학부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도 “창조를 강조하는 박 대통령께서 아마 창조적으로 누더기가 약간 돼 있는 미래부를 잘 가동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마지막 발언자로 김기현 원내수석이 나섰다. 30여 차례의 협상 실무를 맡았던 그는 “길이 막힐 때는 새로운 결단을 통해 길을 열어주시고 최종 결론을 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앞장서 주신 황 대표님, 이 원내대표님을 비롯한 당 지도부에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황 대표와 이 원내대표가 협상 기간 내내 불협화음을 낸 것은 당 안팎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정부조직법 협상 과정에서 새누리당 지도부가 절묘한 정치력을 발휘했다고 보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과연 이들이 서로 칭찬을 주고받을 만큼 제 역할을 충분히 했던가. 국민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렸다면 좀더 낮은 자세로 그간의 ‘정치 실종’에 대해 자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던 것은 아닐까. 새누리당 지도부의 발언을 들으며 이런 물음이 머리를 맴돌았다.

고성호 정치부 기자 sungho@donga.com
#여야#정부조직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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