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해규]취직 안 되는데 직업교육은 잘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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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해규 서울대 교육학과 초빙교수
임해규 서울대 교육학과 초빙교수
예전에 비해 안정적인 직업생활을 하는 것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다. ‘사오정’은 45세에 정년퇴직하는 고용의 불안정성을 상징하는 말이고 ‘88만 원 세대’는 청년들의 열악한 일자리 상황을 상징하는 말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좋은 직장을 많이 만들고 그곳에서 유능한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새 정부도 ‘창조경제’로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학위-자격-직무경력을 호환하는 통합적 국가역량체계를 만들겠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 고위 공무원들이 책상 앞에서 만든 정책만으로는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이를 수용하는 현장은 다르게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급자 중심 직업훈련, 외면당해


그런 면에서 한 직업전문학교 운영자의 경험담은 곱씹어 들을 필요가 있다. 왜 통계와 현실이 다른지에 대한 설명이다. 그는 대형 학원이나 직업전문학교들이 자체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중소기업 등과 6개월 또는 1년간 ‘현장실습’이란 명목으로 협약을 맺는다고 털어놨다. 관계 기관으로부터 계속 지원을 받기 위해서란다. 이들은 정식 취업자가 아니라 ‘현장실습생’이기 때문에 길어야 2년이 안 돼 다시 실업자가 된다. 그리고 다시 소액의 훈련수당을 받으며 직업훈련을 받는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이마저도 어렵기 때문에 창업을 하지만 대개 망해서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되기 일쑤다. 정부의 직업훈련 정책은 실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반실업 상태로 유지하는 정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직업교육훈련이 성과를 거두려면 훈련을 받은 참여자들이 취업 등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직업교육훈련 서비스가 취업에 유용하고 취업 후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훈련기관의 교육 내용이 거의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가 직업훈련생을 위해 비용을 대고 교육을 받으라고는 하지만 실제 교육 내용이 정말로 취업에 도움이 될 정도인지는 따져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수요자 중심 교육을 늘 외치지만 실제로는 공급자(정부) 중심의 직업교육훈련이 된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첫째, 직업교육훈련을 위한 가장 중요하고 중심적인 교육기관을 지금처럼 학원이 아닌 전문대학, 일반대학, 특수대학 등의 정규 고등교육기관으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학습자들이 고등교육기관에서 평생직업학습을 배울 수 있도록 국가장학재단과 고용보험의 재원으로 지원해야 한다.

둘째, 노동조합이나 직능별 협동조합 등이 직업교육훈련 시장을 형성하는 데 주도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정책과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국가 표준 직무능력을 제정 및 개정하고, 자격의 제정과 개정 사업에 이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실제 직업교육훈련을 받고 이를 통해 취업을 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셋째, 고등교육기관에서 이뤄지는 직업교육훈련 교과는 산업계의 직능 협동조합 등이 중심이 돼 만드는 국가 표준 직무능력을 기초로 삼아야 한다. 넷째, 전국적 차원에서 평생직업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평생교육법과 인적자원기본법을 통합 발전시킨 ‘평생학습지원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학원 아닌 정규 학교서 가르쳐야


양질의 새 일자리를 만드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직업교육훈련을 통해 구직자와 회사를 연결해주는 것은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이다. 없는 일자리를 만들어 실업자를 구제하는 것보다는 실업자의 수준을 높이고 회사에서 쓰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더 쉽고 효과적인 방법이 아닌가. 부디 새 정부는 공급자 위주의 고용·실업정책에서 벗어나 무엇이 실업자와 회사에 더 필요한 것인지 따져보고 정책을 세우기를 바란다.

임해규 서울대 교육학과 초빙교수
#실업#직업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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