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창무]몸사리는 경찰에 민생치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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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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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무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한국경찰연구학회장
이창무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한국경찰연구학회장
수원 20대 여성 납치 살해사건은 비극이다. 피해 여성과 유가족의 비극이고, 경찰의 비극이다. 이번 사건을 통해 경찰 신고체계와 현장출동, 그리고 초동수사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뇌물수수 등으로 가뜩이나 떨어진 경찰 위상은 더 추락할 수 없는 바닥의 끝을 바라보게 됐다.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조현오 경찰청장은 사의를 밝혔다. 조 청장 스스로 “경찰의 무성의함이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고, 특히 거짓 해명으로 국민을 실망시켰다”고 말할 정도로 사태는 심각하다.

수원사건으로 경찰 위상 추락

문제는 경찰청장이 바뀌고 경찰관 몇 명 문책으로 이런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일부에서는 당시 출동한 경찰이 제대로 현장을 탐문하거나 사이렌을 울리고 수색했으면 살해를 막았을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런 방법들을 동원했다면 피해 여성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왜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이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고 갖가지 처방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약효가 오래갈 것 같지는 않다. 장례식장 유착비리와 인천 조직폭력배 난투극에 대한 미온적 대응으로 경찰이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총을 쏴서라도 잡으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경찰비리를 전담하는 수사팀을 만들었다. 그런데 또다시 이런 사건이 터졌다. 경찰청장을 비롯해 위에서는 죽어라고 기강 확립을 외치고 각종 전담팀까지 만드는데 도대체 왜 그럴까?

지금 우리나라 경찰은 꽉 막힌 배수관과 같다. 막힌 것을 빼내려 하지 않고 수압만 높이는 꼴이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 과부하가 걸리고, 뭘 해도 안 된다는 자괴감과 피해의식이 팽배하다. 일선에서는 “형사가 수사를 제대로 안 한다”는 소리가 파다하다. “왜? 가만있어도 월급을 받는데, 괜히 무리했다간 책임만 지고 잘못하면 손해배상까지 해줘야 하니까”라는 답변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과거 잘못에 대한 업보일 수 있지만 우리나라 경찰의 적극적인 활동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너무 많다. “이렇게 해도 된다”는 권한을 주기보다는 이런저런 일을 하지 말라는 것들만 널려 있다. 그러나 일을 하다 보면 실수도 생기게 마련이다. 고의로 또는 과실로 벌어진 실수가 아니고 열심히 하려다 발생한 실수라면 오히려 격려해주고 감싸주는 분위기와 문화가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인터넷 강국답게 경찰의 작은 실수도 초고속으로 퍼져나가는 세상이다. 한밤중에 사이렌을 울리고 수사했다가 자칫 잘못된 신고로 판명되거나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면 해명하기 급급하고 문책이 따른다. 열심히 하면 나만 피해를 본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경찰관 경험 1년도 길다. 이처럼 작은 실수 하나라도 문책 대상이 될까 걱정하며 몸을 사리는 경찰 앞에 완벽한 민생치안이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경찰청장이 독려하고 질책해도 괜히 나섰다가 나만 다친다는 인식이 조직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한 ‘국민을 위한 경찰’은 너무나 먼 곳에 있을 수밖에 없다.

잘못은 꾸짖되 격려도 함께 해야

잘못은 엄중하게 꾸짖지만 기죽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격려야말로 경찰을 제대로 일하게 하는 동력이다. 돈을 많이 벌려고 경찰관이 된 사람이 있겠는가. 많은 경찰은 아직도 ‘국민을 지킨다는 자부심과 명예’를 초심(初心)으로 간직한다. 초심을 잃지 않게 북돋아 주는 것, 주고받는 게 세상 이치라면 관심과 격려는 ‘명품 치안’을 위한 작은 비용일 수 있다. 대한민국 경찰은 남의 경찰이 아니다. 우리 경찰이다. 경찰은 국민이 키우는 자식이다. 공부 못한다고 야단만 치기보다는 공부를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훌륭한 부모가 취할 태도가 아닌가 싶다.

이창무 한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한국경찰연구학회장
#수원20대여성납치살해사건#경찰#민생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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