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성호]정당은 공작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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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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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나라당이 애처롭다. 당명을 바꾼다, ‘감동인물 찾기 프로젝트’를 한다, ‘대국민 약속’을 다짐한다 등등 쇄신책 마련에 부산하다. 그러나 그리 새로워 보이지 않는다. 본질은 그대로 두고 표피의 화장(化粧), 이미지만의 변화에 그치는 것 같다. 새 간판, 새 주인으로 신장개업해도 음식 맛이 나아지지 않아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경우가 연상된다.

왜 그럴까? 진정한 정당 변혁은 제도를 바꾸고 사람을 바꿔 단기에 뚝딱 만들어내는 공작품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한 이해가 없어 보인다. 제도와 인물 면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식과 행동의 근본적 관점, 즉 패러다임이다. 정당을 이끄는 사람들이 정당을 인식하고 당원으로서 행동하는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만 정당의 본질적 변화가 가능하다.

철 지난 패러다임은 정당을 위계적 조직으로 인식한다. 중앙의 최고지도자들이 하향식으로 조직을 이끌고 정책방향을 잡는 것을 당연시한다. 소속 의원이나 당원은 당 지도부를 따라야 하고 그래야 정당이 구심력을 발휘하며 대의체제를 작동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오늘의 시대 상황에 어울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정당을 수평적 네트워크로 간주한다. 사회이익이 파편화되고 대중이 원자화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강한 기율과 충성심으로 무장된 위계적 당원조직을 유지하거나 하향식으로 구심적 당 기조를 고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정당 패러다임에서 의원과 당원은 동등성과 자율성을 지닌 독립체로 행동하며 자발적으로 유연한 네트워크 연대를 이룬다.

한나라당 비대위가 연일 쏟아내고 있는 방안들은 이런 새 패러다임을 반영하고 있는가? 당명, 로고, 상징색의 변경은 겉포장에 관한 것이니 애교로 차치하자. 지역구 중 상당수는 전략공천지역으로 두겠다거나, 현역 의원의 몇 퍼센트는 공천에서 배제하겠다거나, 신인이나 이공계 출신에게 경선 가산점을 주겠다거나, 복잡한 SNS지수를 공천에 반영하겠다는 식의 자의성 높은 정치공학적 방안을 광범한 의견 수렴 없이 소수의 비대위원이 천명하는 것이 새로운 수평적 네트워크의 패러다임과 부합하는가? 한나라당 후보로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에게 지명직 비대위원이 탈당 요구를 하는 것이 자발성의 새 패러다임과 맞는가? 공공장소에서의 금연, 비행기 일반석 이용, 반말 금지와 같은 이벤트성 ‘대국민 약속’을 소속의원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새 패러다임의 자율성 원칙에 어울리는가?

물갈이론, 대통령 탈당 요구, 행동강령 선언 등 모두가 새롭기는커녕 진부하게 들린다. 구태 정치의 권력게임으로 비치기도 한다. 정작 자율성에 입각한 새 정당 패러다임에 결정적으로 필요한 완전국민경선제는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유권자에게 다가가겠다고 말하지만, 출마 희망자들이 비대위와 곧 구성될 공천심사위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면 한나라당은 여전히 원심력보다 구심력이 강한 낡은 위계적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제도 개선과 인물 교체도 필요하다. 다만 거기에만 몰두해 근본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소홀히 해선 곤란하다. 기존 패러다임 속에서의 제도 개선과 인물 교체는 과거의 답습에 불과할 뿐이다. 누구의 당에서 다른 누구의 당으로 바뀌는 것에 그친다.

체질 개선은 천천히 이루어진다. 발등에 떨어진 불 끄는 데(총선 승리)만 연연하지 말고,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호흡으로 뚝심 있게 새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당명 개정과 상관없이 진정한 변혁이 가능하다. 새로운 정당은 현자(賢者) 몇 명이 인위적으로 만드는 공작품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이 새 패러다임을 수용하고 실천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유기체다. 이는 한나라당뿐 아니라 민주통합당 같은 수권정당을 자임하는 모든 측에 해당되는 말이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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