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상도]외상진료체계, 갈 길이 멀다

  • Array
  • 입력 2011년 10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신상도 서울대 의대 응급의학교실 교수
신상도 서울대 의대 응급의학교실 교수
아덴 만에서 이송된 석해균 선장 치료 ‘이야기’를 배경으로 시작된 외상진료체계 구축에 대한 학계와 정부, 정치권까지 가세한 논쟁이 보건복지부의 외상센터 설치 운영계획 발표로 일단락됐다. 정부는 16개 시도에 권역별로 중증외상 치료시설을 지정하고 매년 외상진료 의사의 인건비 지원을 통해 2016년까지 전국 차원의 외상진료체계를 완성하겠다고 밝혔다.

외상전문시설에서 치료받아야 하는 중증환자가 연간 19만 명이고 이 중 3만 명이 사망에 이르지만 32%는 예방 가능한 사망이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즉, 외상진료체계가 잘 갖추어졌다면 연간 9400명의 생명은 살릴 수 있었다는 고백이다. 응급실을 지키는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가장 두렵고 힘든 상황은 다발성 외상환자가 119 구급차로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다. 마치 절벽 위에서 죽음을 향해 내몰리는 환자에게 아무도 손을 내밀어 주지 못하는 절망을 느끼는 순간이 바로 중증외상환자를 진료할 때다. 수술장이 필요한데 수술장이 없고, 전문의가 필요한데 전문의가 없다. 중환자는 많은데 중환자실이 없다. 모두 외상환자를 돌보지 않기 때문이다. 외상환자는 지금도 한국인 속의 이방인이다. 이 모든 역설이 외상환자를 돌보는 응급의료체계의 현실이다.

외상환자가 병원에 지불하는 평균 비용을 다른 응급질환 환자와 비교해 보면 차이가 없다. 즉,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비슷하다. 그러나 외상환자를 실제 진료하는 데는 응급의학과, 외과, 정형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영상의학과 인력이 필요하고, 수술하게 되면 마취과, 중환자실 치료 인력이 ‘한꺼번에’ 참여한다. 정말 약속처럼 ‘일시에’ 뛰어야 한다. 진료 수익은 비슷한데 병원이 투입하는 인력은 몇 배다. 게다가 평균 입원일수도 외상환자는 24일, 비외상 응급질환자는 9일이다. 병상 회전을 짧게 하는 게 병원의 수익모델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돈이 안 된다.

이렇게 정리해 보니 외상진료는 시장 실패 영역이었다. 응급진료 대부분이 그렇듯 외상진료도 시장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다른 세계였던 셈이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이에 대한 해결을 자임하고 나선 것은 다행이고 진전이다. 그러나 16개 시도에 설치된 외상시설마다 20∼30여 명의 외상전담 전문의를 운영하도록 매년 예산(7억∼27억 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은 궁색해 보인다. 중환자실이 40병상이면 전문 간호사만 80명이 필요하다. 아마도 성공이 쉽지 않을 것이다.

수도권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13개 시도에 설치될 권역별 외상진료센터에 외상전담의로 취직할 의사가 얼마나 있을까. 레지던트를 독립적으로 선발하지 않는 외상외과에 자신의 미래를 투자할 외과 의사가 얼마나 될까. 개원의 유혹을 벗어나 24시간 당직과의 싸움을 즐길 정형외과 의사가 얼마나 있을까. 외상외과의 가장 중요한 기반인 외과와 흉부외과 전공의 지원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방 병원에서 외롭고 고통스럽게 레지던트를 마치고 전문의를 취득한 후 2년간의 외상전문의 과정을 또다시 시작할 패기 있는 젊은 의사가 얼마나 될까.

첫술에 배부를 수 없겠지만 외상진료체계 구축 방안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외상진료체계에서 일할 전담 의사들을 확보할 실효성 있는 안을 만들어야 한다. 서울로 몰리는 의료진을 탓할 게 아니라, 돈이 되는 사치성 의료를 추구하는 병원들을 탓할 게 아니라 지방에서 멋진 인술을 펼칠 젊은 의사, 죽어가는 생명들을 붙잡고 질긴 사투를 감내할 용기 있는 의사들을 양성해야 한다. 이런 비전이 이번 정부 발표에 보이지 않는다. 공공의료가 실패한 시장에서 살아날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신상도 서울대 의대 응급의학교실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