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지식경제부는 해외자원개발펀드 조성을 위해 한국석유공사 등에 1100억 원을 출연했다. 하지만 현재 100억 원만이 자원개발 사업에 투자되고 나머지 1000억 원은 공사 은행계좌에 그대로 남아 있다. 여기에서 발생한 금융 이자 역시 이 공기업들 차지가 됐다. 글로벌 재정위기로 허리띠를 졸라매도 모자랄 판에 멀쩡한 국민 세금이 엉뚱한 곳에서 3년째 낮잠을 자고 있는 셈이다.
28일 강창일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정부가 자원개발에 쓰라고 준 돈이 에너지 공기업의 계좌에 그대로 방치된 것은 이른바 ‘블라인드 방식’이라는 독특한 펀드 조성 방법 때문이다. 이는 펀드 투자자들이 투자금액을 약속해 놓고(약정) 실제 수요가 발생해야 돈을 펀드에 납입하는 방식이다. 민간기업들의 투자 유치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해외자원개발펀드를 조성하기 위해 정부가 선택한 신종 금융 기법이다.
블라인드 방식 덕분에 펀드의 전체 규모는 겉으로는 정부 투자분 1100억 원과 약정액 6000억 원을 합해 총 7100억 원 규모에 이른다. 지경부는 5월 이 가운데 1300억 원이 자원개발에 투자됐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9월 말 현재 실제 투자금액은 575억 원에 불과했다. 자원개발 치적을 홍보하고 싶은 정부가 투자 예정금액을 실제 투자액으로 부풀린 것이다.
정부가 해외자원개발펀드를 조성한 것은 전문성이 있는 에너지 공기업이 주도하고 민간회사가 참여해 대규모 자원개발 사업을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펀드에 참여한 기업은 대부분 정책금융공사, 산업은행, 한국전력 등 공기업이다. 민간자금을 유치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정부가 이 공기업들의 등을 떠밀어 투자에 나서게 했다는 의심이 드는 이유다.
정부가 대규모로 펀드를 조성해놓고도 제대로 돈을 쓰지 않은 것은 투자리스크에 따른 비판을 의식한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원개발은 10년을 내다보는 ‘고위험 고수익’의 투자다. 정부와 공기업은 물론이고 민간기업도 미래의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당위성도 변함이 없다. 한국보다 자원 매장량이 풍부한 중국과 일본 역시 미래를 내다본 선(先)투자를 통해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유일한 돌파구가 해외자원 개발이다. 조성된 투자액마저 금고에 재워 놓는 소극적인 행보로는 자원 확보의 길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정부 주도의 자원개발 과정에서 투명성과 진정성은 확보해야 한다. 자주개발 수치에만 목을 매거나 과장된 투자 규모에 집착하지 말고 내실을 다지면서 공격적인 투자에 집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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