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를 읽고/이칠용]‘조선장’이 황포돛배 수주할 수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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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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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경남도가 고증을 거쳐 원형 복원했다고 밝힌 거북선에 ‘미국산 목재’가 사용돼 경찰이 수사 중이라는 동아일보 7월 21일자 ‘이순신 장군님 죄송합니다’ 제하의 기사를 보고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수많은 우리 문화유산의 원형 복원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중요무형문화재, 시도무형문화재 제도를 두고 있으며, 이에 근거해 기능보유자를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을 보존 전승하는 이들은 한평생을 이 분야에 종사하며 민족 문화유산 지킴이 노릇을 하고 있다.

우리 고유의 선박을 만드는 조선장(造船匠)도 지정돼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이 분야의 전문가인 조선장 기능보유자에게 조언을 구해 건조했더라면 별 문제가 없었을 텐데 하는 아쉬운 감이 없지 않다.

차제에 정부 당국에 건의하고 싶은 것이 있다. 앞으로 4대강 사업이 완성되면 수많은 관광유람선이 떠다니게 될 것이고 황포돛배 등 우리 고유의 선박 건조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법적으로 우리 배 건조를 수주할 수 없게 돼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그동안의 조달청 입찰공고 사례에서 보면 황포돛배 등 전통 한선의 경우 산업분류(G2B) 고유번호가 없어 섬유강화플라스틱(FRP) 등으로 제작하는 휴양선 범선 분류번호(25111801)를 사용하는 공업용 선박들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다. 이는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본다.

조달청은 ‘국가 간의 비교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유엔에서 권고하고 있는 국제표준산업분류를 기초로 작성한 표준산업분류에 설정된 사례가 없어 곤란하다’고 회신했는데 이런 무책임한 답변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러고도 어찌 우리 고유 문화유산의 산업화, 세계화, 향토산업화를 부르짖으며 정책적 지원을 하겠다는 말인가.

산업분류번호 부여 문제는 비단 한선 분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두화, 합죽선, 낙죽장도, 백동연죽장, 갓, 화각, 백골(栢골) 등 우리나라 고유의 공예품이자 앞으로 세계적 명품을 탄생시킬 수 있는 수많은 종목이 국제고유번호가 없어 ‘미아’ 상태다. 관계부처가 이러한 종목을 서둘러 파악해 유엔에 등재해야 할 것 아닌가.

말로만 ‘전문가 우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신토불이’를 외칠 것이 아니라 각 분야 문화재 기능보유자들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미래 지향적인 연구와 전승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문화유산을 산업화, 세계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 그런데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회피하는 것은 관계당국의 직무유기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이번 거북선 발주 사건을 계기로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 전반에 걸쳐 문제점을 찾아내 고치는 ‘일하는’ 정부와 공무원들을 보고 싶다.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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